[소드 아트 온라인] 소드 아트 키리토 라인 10화 팬픽 번역

10화. 서약의 이도류(2)



내 들뜬 상태는 근년에 드물게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제55층이 빙설 지대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한 장비를 아이템 스토리지에 확보하는 것을 잊고 있었을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있을 수 없다.
난 도대체 얼마나 얼빠진 짓을 한 걸까. 게다가 그 뒤처리를 동행인에게 시키다니,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너무 창피하다.

키리토가 준비해준 것은 몸을 다 가리는 검은 가죽으로 된 묵직한 느낌을 지닌 코트였다. 그야말로 실용성을 중시한 물건으로 남자답다고 할까 투박하다고 할까, 어쨌든 그런 일품이다. ……매우 따뜻하다.

「키리토, 춥지 않아?」

나한테 방한벌을 건네줬기 때문에 키리토의 장비는 빈말로도 옷을 두텁게 입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본인은 평상시대로의 장비니까 문제 없다고 말해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허풍……이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배려구나.

「춥지 않다고 하면 믿어줄래?」

「무리야.」

「그럼 추운 걸로 칠게. 그렇긴 해도 참을 수 없을 만한 추위는 아니니 빨리 클리어하고 린더스로 돌아가자고. 커피 정도는 서비스해줄 거지, 점주씨?」

뒤돌아본 키리토의 얼굴에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더욱 어리게 보이는 것은 애교겠지. 나도 동안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있지만 키리토도 상당한 동안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침착하면서 당당한 태도 때문에 만난 당초에는 몇 살이나 연상일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동갑이나 연하로 보이게 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찻집은 아니지만 고객에게는 서비스해줄게. 커피 같은 거나 홍차 같은 것까지 뭐든 주문해줘.」

「같은 거라는 말이 왠지 슬퍼지는군. 그리고 나로서는 녹차 향기가 그리워서 오랜만에 마시고 싶어졌어.」

「차를 주문하는 건 사양해줄 수 없을까? 다음부터는 준비해둘 테니까. 그건 그렇고 키리토는 일식 편향주의니?」

「글쎄. 어느 쪽이냐고 하면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 일식이 그리워진다든가 그런 느낌 아닐까.」

「아, 그거 알 것 같네. 그쪽 맛을 발견하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기뻐지거나 하니까.」

식사가 최대 오락인 아인크라드인 만큼 진미 묘미 미미와 비슷할 정도로 미묘하거나 유감스러운 맛을 지닌 식재료나 요리가 나온다. 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게 자주 나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괜사리 먹는 거에 대한 정열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가게 요리가 맛있었다든가, 그 몬스터가 드랍한 식재료는 두 번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든가, 그런 타애 없는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걷는 도중은 즐거웠다. 동시에 내가 경험해 온 퀘스트로서는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안전한 여행이기도 했다.

키리토의 이도류가 소문대로 흉악한 성능을 자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 스킬을 종횡무진으로 사용하는 키리토 본인의 레벨과 숙련도 덕분인지, 아무리 최전선이 아니라고 해도 나오는 적을 모두 일격으로 격파해버리는 모습은 무서움을 넘어 기가 막혀버렸을 정도다. 나도 55층을 적정 영역으로 할 만한 레벨 마진은 확보하고 있지만 저 정도는 아니다. 사실 무리다. 나와 키리토 사이에는 너무나 엄청난 전투력 차이가 있다. 너무 압도적이라서 무서울 정도다.

나는 대장장이가 메인인 후방 지원 플레이어니까 그 정도 감상으로 끝나지만, 이것을 보는 공략파로서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겠지.
최전선에 사는 플레이어는 가혹한 전장에 계속 몸을 두고 있는 만큼, 강함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매우 높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자존심이 강하고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길드 내부에서의 동료 의식은 있어도 다른 길드한테는 강렬하게 대항심을 불태우거나 하는 것도 그런 의식이 원인이겠지. 특히 성룡연합 등은 혈맹 기사단에 강한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경쟁심이 강한 것도 공략파의 특징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키리토는 이색적인 존재다. 목숨을 건 데스 게임에서 생존률이 낮은 솔로 플레이어로서 계속 싸워 왔다. 내가 아는 한 키리토가 어딘가의 길드에 소속했다는 사실은 없다. 게임 개시부터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로 혼자서 살아남아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도류 스킬 발현이 그 경향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 《검은 검사》의 이름은 혈맹 기사단 단장인 히스클리프와 대등한 최강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최전선 플레이어, 특히 혈맹 기사단 단원들이 키리토를 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 세계를 클리어하는 최정예라고 자부하는 그들이 키리토 같은 존재를 시기하지 않을 리가 없다.

만일 키리토가 빠른 단계에서 혈맹 기사단 또는 다른 공략파 길드에 참가하고 있으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키리토를 싫어하는 것은 같은 집단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동료》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핵심을 찌르는 거려나?
예를 들면 키리토가 히스클리프나 아스나처럼 길드 속에서 활약하고, 길드를 통해 공략파에서 분투하고 있었다면 적개심보다는 존경과 경의를 거두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렇기는 해도 그것은 결국 만약인 이야기다. 키리토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솔로를 관철해 온 걸 테고, 키리토와 혈맹 기사단의 반목 등도 내가 모르는 당사자들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 단지 그뿐이다.

「음, 역시 좋은 검이야.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이 검을 구입하는 것도 좋겠군.」

또 몬스터와의 조우전을 소드 스킬 일격으로 끝낸 키리토가 검 두 개를 등의 칼집에 넣으면서 매우 기분 좋게 말을 걸어 왔다. 키리토가 휘두르는 검 두 자루는 내가 가게에서 키리토에게 추천한 것이다. 퀘스트 몬스터인 백룡은 필드 보스에 준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단 둘이서 도전하게 되는 불안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키리토에게 빌려준 것이다.
마음껏 검을 휘두르고 만족스럽게 기뻐하는 키리토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튀고 있어서 마치 어린애 같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검을 받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던 여검사님이 있었지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둘 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칭찬해주는 건 고맙지만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한다는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우울해지잖아.」

「그렇게 말해도 퀘스트 정보도 새로운 게 나오지 않았잖아? 마스터 스미스가 조건이 아니라면 허탕을 칠 가능성이 높다고.」

「뭐 그건 그렇지만 말야. 여기까지 오면 성공할 수 있기를 신에게 빌 뿐이지.」

55층 북쪽의 마을에서 퀘스트 조건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예상대로 우리가 기대한 대로는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장로로 보이는 백발 노인의 긴 이야기에 어울린 탓에 이미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석양은 아름답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쌓인 피로감을 씻을 수 없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에 소비한 노고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키리토가 기뻐한 이유는 그렇게 쌓일 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할 요소를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나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에는 라이프 워크와는 다른 무서움이 느껴졌다. 이유가 이유인 만큼 만담밖에 되지 않겠지만.
키리토의 심정도 알기 때문에 딱히 아무 말 없이 키리토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간다. 압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전투를 반복하는 동행자의 모습에 믿음직스러움을 느끼는 한편, 할 일이 없는 상태인 내 현상을 돌이켜본다.

내가 할 일이 없다.
키리토가 너무 강해서 내가 나설 데가 없다. 키리토는 출발하기 전에 몬스터는 전부 자기가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그야말로 자기가 한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나한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정말로 《동행해서 퀘스트 조건을 채우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전력외 통지를 받은 몸으로서는 착잡하기도 하지만, 차원이 다른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를 앞에 두고 투정을 부려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애초에 키리토가 서두르고 있는 요인은 방한복을 강탈해버린 나한테도 있으니까 불평하는 것은 더욱 수치스러울 뿐이다.

……나도 정말 추하구나.

「리즈, 멈춰. 그대로 수정 그늘에 숨어 있어. ……아무래도 행차한 모양이야.」

출발 전의 고양은 어디로 갔는지 혼자 낙담하고 있던 내 의식을 끌어올린 것은 키리토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정지하라고 말한 거였다.
명백히 지금까지의 키리토와는 다른 음성이라 한순간에 내 경계심도 높아졌다. 보니 전방에 공간이 일그러진 것 같은 화려한 인광이 퍼져 있다. 퀘스트 몬스터, 특히 거대 몬스터의 출현을 고하는 연출이다.
조금씩 무기질인 폴리곤이 생물적인 윤곽을 만들어 가면서 마침내 거대한 익룡의 모습의 전모가 드러났다. 빙설과 수정의 에리어에 생식하는 몬스터답게 창백한 비늘로 덮인 피부는 매우 단단해 보여서 그 방어를 깨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몬스터에게는 한손검보다 메이스나 도끼 같은 둔기나 중량 무기 쪽이 유리하지만…….

「키리토, 나도 돕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리 레벨 차이가 있어도 역시 솔로는 위험하다. 오랜 시간 전위에 서는 것은 대미지 판정의 리스크를 가속도적으로 늘려 간다. 아무것도 아닌 일격을 치명적으로 바꾸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최소한의 페어를 짜서 탐색하러 나온다. 스위치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것이 솔로 플레이어 최대의 약점이다.
레벨로 치자면 나라도 대항할 수 있는 적이다. 그러므로 키리토가 주력인 건 변함 없어도 그 부담을 줄이는 것 정도는 나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필요 없어.」

키리토의 대답은 무정하기 그지 없는 한 마디였다. 바로 나온 가차 없는 거절에 나는 한순간 망연해버린다.

「……미안. 말이 지나쳤어. 리즈를 가볍게 보는 게 아니야. 다만 나는 쭉 솔로였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싸움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연계에 약해. 그러니까 여기는 나한테 맡겨줘. ……그렇군, 만약을 위해 텔레포트 크리스탈을 준비하고 지켜봐주지 않을래?」

미안하다는 투로 덧붙인 키리토의 목소리는 쓴맛이 섞여 있었다. 말이 지나쳤다기보다는 어딘가 자기 자신이 한 말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키리토의 그것은 무심코 나와버린 본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굳은 목소리와 표정이었기 때문에 매우 인상 깊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방해로 생각했다든가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저것은 좀 더 심각한 무언가가 담겨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계에 약하다는 건 그야말로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솔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맞을 테지만, 플로어 보스전을 수십 번이나 치른 키리토가 이제 와서 전투에서의 연계에 불안을 안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위태로운 플레이어라면 이미 플로어 보스전에서 배척되어 있었을 것이다. 키리토는 솔로 플레이어였으니까 48명의 레이드 멤버에 걸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바로 길드 연합에 밀려나 있었을 것이다.
흐음, 그렇게 어설픈 거짓말을 할 정도로 키리토는 동요하고 있다는 거네. 그건 아마 아직도 솔로 플레이어를 관철하고 있는 키리토의 사정일 테지만. ……그만두자. 재미로 남의 깊은 부분에 발을 디디는 건 이 세계가 아니라도 매너 위반이야.

「알았어. 네가 위험해지면 바로 달아날 테니까 열심히 하라고.」

「미안하군. 위험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 녀석을 사냥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지도 모르니 얌전히 기다려줘.」

「뭐, 이봐, 그거 무슨 소리야?」

키리토가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부루퉁함이라고 보였지만, 과연 내 시도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의문이 담긴 말을 건넸을 때는 이미 키리토는 검을 뽑아 참격을 날리고 있었다. 민첩형 스테이터스인가 착각할 정도로 빠르다.
비유가 아니라 눈에도 멈추지 않을 속도로 백룡에게 육박했나 싶더니, 백룡이 계속 날린 발톱을 피하면서 선명하게 참격을 마구 날렸다. 아픔으로 화가 났는지 공기를 찢는 용의 포효가 주위 일대에 울려 퍼지면서 공기를 진동시킨다.

묵직하게 높아지는 중압 속에서 태연하게 싸울 수 있는 키리토는 역시 공략파 플레이어라는 것을 실감한다. 나는 조금 전의 포효로 한순간 압도당해 움츠려버렸는데.
마을에서 모은 정보에 의하면, 용의 주요 공격 수단은 그 예리한 발톱을 사용한 휘두르기와 큰 입에서 토해내는 얼음 브레스, 그리고 용의 거체를 지탱하는 날개를 구사한 돌풍 공격 삼종. 키리토도 그 정보를 듣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우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투이지 결코 거리에서 하는 곡예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게 말이지――.

……브레스는 벨 수 있는 거였어?

그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백룡이 목을 젖히고 그 거대한 입으로 순백의 분류를 토해낸 것도 순간, 키리토가 지닌 검 두 자루가 소드 스킬의 인광을 빛내자마자 두 개의 검섬이 십자를 그리듯이 교차되었다. 
그러자 눈보라와 부스러기로 구성된 용의 브레스가 《베여 갈라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검으로 브레스를 벨 수 있다》는 것을 아인크라드의 잔지식으로서 이야기하면 몇 명이나 믿어줄까.

도중의 졸개 몬스터는 키리토가 단칼로 모두 처리해 왔지만, 보스 클래스인 백룡을 상대해도 일방적인 싸움인 것은 변함 없었다.
격전을 떠올리게 하는 격렬한 움직임의 응수인 만큼 키리토의 대단함이 크게 강조되는 결과가 되어 있다. 발톱 공격은 모두 피하거나 튕겨내버리고, 브레스는 그때마다 소드 스킬로 상쇄해버린다.
그야말로 완봉 그 자체. 믿기 어려운 광경에 정말로 현실인가 하고 뺨을 꼬집었을 정도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을 진행시키는 키리토가 공격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대미지를 거의 받지 않고 검의 틈에 비집고 들어가 백룡에게 참격을 날리고 있지만 소드 스킬을 한 번도 공격에 사용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소드 스킬을 사용할 만한 틈은 충분히 있을 텐데 키리토는 일부러 싸움을 오래 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백룡과 싸우기 직전에 길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지. 키리토는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던 걸까?
하지만 어째서. 그런 일을 할 의미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리 키리토가 대단하다고 해도 전투를 오래 끌면서 그 와중에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전투라도 그 천칭의 한편에는 플레이어의 목숨이 실려 있다, 적은 해치울 수 있을 때 해치워버리는 것이 철칙이다.
그러나 키리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 싸움을 일부러 계속하려 하고 있다.

「놀고 있는…… 그럴 리가 없잖아?」

내 입으로 말한 내용인데 전혀 믿지 않는 내가 있다. 키리토는 능청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상에서 보이는 일면이지 전투할 때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빠르게, 오로지 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적을 사냥한다.
일절 쓸데없는 동작이 없는 전투로 조금의 반격도 허용하지 않고 선수 필승으로 싸우는 키리토의 모습에서 섬광이란 이명을 지닌 친구의 모습이 겹쳐졌다. 견적필살이라는 말이 걸맞는 싸움이다.

이도류라는 스킬은 공격 성능을 추궁한 스킬이라고 키리토가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말을 체현한 스킬이라고 이야기해준 것은 키리토 본인인데.
지금 키리토는 그런 이도류가 지닌 특성을 버리고 방어에 전념하면서 오로지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키리토의 HP바는 거의 감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간 경과와 함께 자동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배틀 힐링?
하지만 그건 습득 조건이 어려운 엑스트라 스킬 중에서도 매우 난이도가 높은 전투 스킬이고, 실용에 충분한 숙련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큰 대미지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쓸모 없다고 들었는데.
아스나조차도 습득은 둘째 치고 숙련도를 올리는 조건을 두려워해서 느리게 진행하고 있는 것 같고. 완전히 습득하는 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메마른 웃음을 띄우고 있었지. 아스나도 상당히 무모하게 구는 애니까 지금이라면 실용적인 레벨에 이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개 배틀 힐링을 스킬 범위에 넣을 바에는 포션을 마시는 게 훨씬 실용적이라는 것이 공략파의 최종 견해였다.
그런 까다로운 스킬을 당연하다는 듯이 잘 다루는 키리토. 알고는 있었지만 터무니없는 녀석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수라장을 헤쳐나왔단 말인가. 최강 플레이어라는 간판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쩌면 키리토는 아인크라드에서 목숨을 건 횟수가 가장 많은 플레이어 아닐까?

그렇게 기가 막혀 하면서도 나는 키리토가 싸우는 모습으로부터 눈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이렇게까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오래 전에 아스나의 싸움을 보았을 때 이후였다. 그때는 무도를 춤추듯이 세검을 다루는 우아하고 가련한 아스나의 모습에 넋을 잃고 보았다.
그런 아스나의 검무에 비해 키리토의 검술은 매우 거칠고 남성적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강함과 용맹으로 가득한 것이기도 했다. 보고 있는 내 가슴까지 뜨겁게 만들어버리는 격렬한 매력으로 가득한 검무.

게다가 키리토가 공격을 삼가고 방어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키리토의 검술과 몸놀림은 그야말로 정교하고 치밀한 것이었다.
적의 공격을 예측하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절묘한 간파 능력으로 발톱 공격을 피하고, 틈이 패링을 걸어서 올려다보게 하는 거체를 움찔하게 만들고, 용의 비장의 수인 브레스는 소드 스킬을 구사해 무효화해버린다.

아인크라드에서도 최강종인 드래곤을 계속 혼자서 상대하면서도 아직도 클린 히트를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그 대단함에 나는 추위와는 다른 의미로 떨리는 몸과 고양하는 가슴의 고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친 정도인 대미지는 배틀 힐링으로 회복해버린다. 방패가 없는 데다 경장인 검사로서는 파격적인 방어 성능이었다. 장비에 의지하지 않는 플레이어의 기능을 규명한 움직임은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검은 검사》를 아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키리토의 강함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벨과 장비, 무엇보다도 이도류 스킬이 검은 검사의 강함을 지탱하고 있다는 인식은 분명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플레이어 제일의 플레이어 스킬 보유자, 시스템 외의 움직임을 단련시킨 것이야말로 키리토의 강함의 본질이 있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두 자루의 칼로 시전하는 검무를 시야에 둔 내 뺨은 열기에 들떴는지 새빨갛게 홍조하고 있을 터. 지금 내 가슴 속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의 이름은 무엇일까. 감동? 희망? 아니면――.

「리즈, 얼굴을 너무 내밀었어! 타겟팅이 그쪽으로 갔어!」

뒤돌아본 키리토가 초조하게 외치는 소리에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반쯤 제정신을 잃고 키리토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인식한다. 좀 더 서두르라는 듯이 머리에 울린 소리에 따른 결과, 몸을 내밀듯이 수정기둥 그늘을 벗어나 모습을 드러

내고 있던 내 실수를 깨닫게 단숨에 핏기가 가셨다.

――위험해.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늦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키리토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던 백룡이 키리토가 한순간에 보인 틈을 타서 그 거체를 공중에 떠오르게 하고 바로 양 날개를 크게 펼쳤다. 여기까지 오면 싫어도 저 녀석이 무엇을 할 생각인지 알 수 있다.
발톱, 브레스를 잇는 제3 공격.
날개가 일으키는 돌풍 공격이 맹렬한 압력을 수반하며 내 몸을 후려친다. 키리토가 우려한 대로 타겟팅이 나로 옮겨진 걸까, 아니면 키리토와 함께 날개가 일으키는 돌풍 범위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나한테 그 답을 요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폭력적인 풍압이 아주 쉽게 내 몸을 떠오르게 하고 그대로 빙글빙글 후방으로 날려버린다. 급격하게 돌아가는 시야 때문에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누군가의 손이 내 몸을 받쳐주는 감촉이 느껴졌다.

……누군가라니, 여기 있는 건 한 사람뿐인데.
키리토도 나와 똑같이 돌풍의 영향을 받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던 나를 따라잡아서 잡아 보인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신들렸다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만.
키리토에게 안긴 채로 돌풍의 범위 밖까지 날아간 끝에 거기서 간신히 착지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았다. 키리토를 방해해버린 것 때문에 낙담하게 된다.
한심한 실수로 한숨이 나오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일렀다.
백룡은 아직 건재하다. 한순간이라도 그 존재를 잊고 지면에 내려선 것으로 되찾은 평형 감각을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온다. 진동과 스턴 효과에 대비해.」

키리토는 내 실패를 일일이 신경 쓰고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이미 임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변환이 빠르다. 솔직히 살았다. 키리토의 태도를 보고 나도 구구하게 고민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으니까.
검을 쥐는 키리토에 맞춰 나도 메이스를 꺼내고 싸울 태세를 갖춘다. 반성과 후회는 나중에 하자. 곤란하게도 돌풍에 밀려서 이동한 곳은 넓게 펼쳐진 전망 좋은 곳이었다. 이래서는 키리토에게 전투를 맡기고 나는 몸을 숨기는 조금 전 같은 전법은 쓸 수 없다.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합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상공을 노려보자, 내려설 곳을 찾아 선회하고 있던 백룡이 한층 더 날카로운 포효를 하며 급강하해 왔다.

――설마 그대로 우릴 짓밟을 생각이야!? 장난이 아니잖아!

짓눌려서 찌부러진 꼴이 되는 건 사양하고 싶다.
그렇다 치더라도 저만한 거체가 내려오는 모습은 엄청난 박력을 느끼게 한다. 크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위협이 된다는 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시각의 폭력만으로도 등골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키리토의 검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키리토의 본질은 갈고 닦은 플레이어 스킬에 있다고 생각했다. 백발 백중으로 성공시키는 패링 등은 얼마나 혹독하게 전투 감각을 익히고 있었던 거냐며 기가 막힐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열 배 이상의 질량 차이를 뒤집고 정면에서 호각으로 부딪히는 것을 보고 물리 법칙이 어떻게 되어 있냐고 외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게임 세계라고 해도 인간이 혼자서 용의 돌진을 막아내는 광경을 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키리토는 괜찮을지라도 키리토를 지탱하는 지면이 용의 질량과 운동 에너지에 끝내 버틸 수 없게 된 것 같다.
쩌적 하고 뭔가 싫은 소리가 발밑에서 들려 왔나 싶더니, 다음 순간 키리토와 나를 중심으로 발밑이 함몰했다.
아니, 함몰이 아니다. 갈라졌다. 우리가 지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곳은 아무래도 거대한 함정을 덮어놓은 얼음 바닥과 쌓일 대로 쌓인 눈이라는 불안정하기 그지 없는 발판이었던 것 같다.

「젠장, 트랩인가!? 리즈, 달아나!」

붕괴한 발판으로부터 무사한 지면으로 피난할 수 없었다. 나는 뜻밖의 폭락으로 완전히 자세가 무너졌고, 키리토는 백룡의 돌진을 소드 스킬로 받아냈기 때문에 기술 후 경직으로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날 수 없는 상태였다.
저 빌어먹을 백룡은 낙하해 가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유연하게 공중 정지를 하는 것으로 폭락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다. 날개가 있는 존재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지금만큼 소드 아트 온라인에 비행 어빌리티가 실장되어 있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낙하라는 사태로 인한 동요, 바닥이 안 보이는 나락에 빨려 들어가는 공포. 내 목에서 있는 힘껏 지르는 비명이 나온 것도 당연했다.
확실히 구멍을 파고 메우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형태로 실현해주지 않아도 되잖아. 하느님은 바보!

「리즈! 잡아!」

새하얗게 된 사고를 찢어버릴 것 같은 날카롭고 강한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은 뒤 키리토가 내밀어준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잡아 끌어당긴다. 마치 그 손이 천국으로 통하는 거미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이때의 나는 그저 키리토에게 매달릴 뿐이었다. 한심하다.

「멈춰……윽!」

낙하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약하게 하려는지 키리토는 왼손에 쥔 내 검을 암벽에 힘껏 찔렀다. 검은 튕겨나가지 않고 암면에 꽂혔지만, 그것으로 키리토와 내 낙하 속도가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가 현실 세계라면 검과 암벽에서 강렬한 마찰이 발생해 낙하 속도를 단숨에 떨어뜨리겠지만, 여기는 아인크라드다. 검과 암벽의 충돌로 다소나마 효과는 있었는지 낙하 속도가 약간 완만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암면에 꽂힌 검은 거의 저항 없이 하부로 미끄러져 떨어져 간다.
이런 걸 두고 가열한 나이프로 버터를 가르듯이라고 하던가.
검과 암면의 접촉면으로부터 붉은 라이트 효과가 끊임없이 명멸하고 있다. 검의 내구치가 모두 깎이고 있다는 증거다.

위험하네. 내 검은 민첩성을 우선해서 만든 것이라 내구치 한계도 약간 낮게 설정되어 있다. 원래 이런 무모한 사용법 자체가 상정되어 있지 않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내 예상대로 검의 내구치 한계가 곧바로 찾아왔다. 아이템이 소멸하는 독특한 파열음에 적막을 느낄 틈도 없었다. 모처럼 완만해져 있던 낙하 속도가 다시 가속하면서 죽음의 공포가 재차 소리 없이 다가온 것이다.
여기는 권내 구역이 아니다. 낙하 대미지로 라이프가 제로가 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초조해하는 마음과 그런 초조함 조소하듯이 타개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현 상황에 절망이 퍼져 간다.

「대상――리즈벳! 전이――린다스!」

그 순간 키리토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내가 느낀 것은 한순간의 재치를 살린 키리토에 대한 갈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슴을 단단히 조이는 안타까움이었다.
낙하를 멈출 수단을 잃은 키리토가 맨 먼저 한 것은 나를 도망치게 하는 것이었다. 발목을 잡고 폐만 끼쳐 온 걸리적거릴 뿐인 나를 무엇보다도 우선하려고 한 것이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내 안부만을 걱정해주었다. 그런 키리토의 다정함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고, 그렇게 하게 만든 내 미숙함에 눈물이 나올 만큼 분했다.
그러나 그렇게 신속하기 그지 없는 키리토의 칭찬받아야 할 판단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푸른 크리스탈 때문에 불발로 끝난 것을 알았다.

――크리스탈 무효화 공간.

지금 이런 상황에 그렇게 악랄한 함정을 설치하다니 너무하잖아. 정말로 악취미적인 장치를 해둔 악질적인 개발자 같으니라고.
내 분노가 카야바 아키히코에게 닿을 리도 없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동안에 칠흑 같은 어둠이었던 나락의 바닥이 단단해 보이는 지면으로 바뀌었고, 이대로 처박히면 목숨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싫다. 난 이런 곳에서 끝나는구나. 현실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런 알 수 없는 세계에서 폴리곤 크리스탈로서 흩어지고, 현실에서 병상에 누워 있는 내 몸은 너브기어로 뇌가 타버리면서 디 엔드. 그런 결말. 그런 마지막.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멍한 눈으로 통학하고, 친구와 타애 없는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시험 결과에 일희일우하고, 동아리 활동도 적당히 하거나 하고. 그리고 휴일에는 남친과 함께 외출할 수 있으면 최고겠지.

그런데 이런 마지막이라니.
이렇게 키리토를 말려들게 하면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니.

「죽고 싶지……않아.」

흘러나온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허약한 것이었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죽고 싶지 않아. 죽게 하고 싶지 않아. 내 손을 잡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분명 이 아인크라드에 사로잡힌 모두를 구해낼 희망이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이런 형태로, 내 실수로 잃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분하고 분해서.

하느님, 나는 죽어도 되니까 부디……제발 내 손을 잡은 이 사람만은 살려주세요……!

죽음 직전에는 주마등이 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불가사의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마등 이야기가 단순한 미신이었던 걸까, 아니면――.

「괜찮아. 넌 죽지 않아. 죽게 놔두지 않아……!」

아니면――내가 죽을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전이 크리스탈을 던져버린 키리토는 공중에서 재치 있게 나와 위치를 바꾸면서 내 몸을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세게, 힘껏 껴안았다.
속삭이는 듯한 키리토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고,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잇따르는 사태에 이미 내 사고 회로는 한계를 고하고 있어서 온전히 상황을 생각할 여유가 남지 않았었다. 오히려 이런 예상하지 못한 사태 속에서 찰나의 사고로 차례차례로 손을 쓰면서 위급 상황에 임하는 키리토의 판단력이나 행동력이 어떻게든 해주고 있다.

그런 나라도 아는 것이 있다.
키리토도 나도 지면에 격돌하는 미래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위치 관계는 키리토가 아래고 내가 위.
이대로라면 키리토는 등부터 지면에 격돌하게 되고, 나는 키리토를 쿠션으로 삼는 형태로 확실하게 보호받고 있다. 낙하 대미지는 지면과의 직접 접촉만 회피하면 대미지를 큰폭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럼 나는 분명 살아날 수 있겠지만――나를 지키려 한 대가로 키리토가 100% 대미지를 받게 되겠지.

자기 목숨을 내던진 키리토의 헌신에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둥둥 뜬 상태로 안정되지 않은 의식 속에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소드 아트 온라인은 VR MMO RPG다.
데스 게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계층 클리어에 관한 것만이 강조되게 되어버렸지만, 이 게임은 본래 전투만이 중요시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물론 이 게임의 상징인 소드 스킬로 대표되듯이 화려한 전투와 장대한 필드, 난해한 미궁 구역 타워와 박력 만점인 플로어 보스 토벌이 메인인 건 달라지지 않지만, 공략 이외의 즐기는 방법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오락 스킬이다. 나는 공략에 도움이 되는 전투 스킬만 갖추고 단련해 왔지만, 플레이어 중에는 나날의 휴식에 오락 스킬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필두는 요리 스킬이고, 이것은 그 솜씨를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대환영인 스킬이었다.
그 밖에도 내가 마음이 끌린 낚시 스킬이라든가. 부드러운 햇볕과 맑은 공기에 몸을 맡기면서 느긋하게 낚싯바늘에 사냥감이 걸리는 것을 기다리는 연배의 플레이어의 모습을 본 이후, 언젠가 나도 그런 식으로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또는 완전한 취미 스킬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략 길드에 필수적인 스킬이 된 재봉이나 세공 같은 것도 있다. 전투와 탐색을 반복하는 최전선 공략 길드에는 얼핏 보면 불필요하지만, 사실 더 이상 없을 정도로 도움이 되고 있다.
그 필두는 방어구를 커스터 마이즈하는 것으로 가능하게 되는 《제복화》다.
통상적으로 장비품은 그 능력도 모습도 다양하지만, 재봉이나 세공 스킬을 조합하는 것으로 방어 성능은 그대로이면서 어느 정도 장비의 모습을 변경할 수 있는 사양이 되어 있고, 그러한 성질을 이용해 길드마다 유니폼을 준비하고 있다. 딱히 길드 구성원 전원이 동일한 장비를 항상 장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가 장비하고 있는 물건은 겉모습은 같아도 성능은 완전히 별개다.

이러한 시각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귀속 집단에 대한 애착이나 충성심을 높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동료 의식도 강해진다. 다른 집단과의 차별화도 쉽고, 동시에 규율이 있는 집단으로서 통제하기도 쉬워진다.
혈맹 기사단 등이 그 필두다. 하얀색과 붉은색으로 된 기사복은 매우 눈에 띄기 때문에 누가 봐도 혈맹 기사단 소속 단원이라는 걸 알 수 있고, 지금에 와서는 최강 길드의 간판을 짊어지는 자각을 재촉하기 쉬워지고 있다. 유니폼 그 자체가 자랑이 되어서 플레이어의 행동을 자성시키는 효과까지 부여되고 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그런 조직 통제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설마 히스클리프가 발안한 건 아니겠지? 싫다, 그 남자가 밤을 새면서 길드의 기사복을 디자인했다고 한다면. 그런 이미지를 부술 것 같은 행동은 사양해줬으면 한다.
혈맹 기사단에는 여러 가지 부문이 있다고 하니 아마 복식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
더해서 혈맹 기사단이라기보다는 아스나의 공적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혈맹 기사단의 유니폼이 워낙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탓에, 투박한 갑옷이 길드 컬러인 성룡 연합 등이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을 진심으로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데서 대항 의식을 불태울 필요는 없는데.
덧붙이자면 나는 그쪽 커스터 마이즈와는 쭉 인연이 없었다. 장비의 모습도 모두 디폴트다.

스킬에 한해서도 즐기는 방법은 천차만별이고, 이전에 시리카와 함께 간 플라워 가든 같은 예도 있다. 이 세계는 검과 전투만이 모든 게 아니기 때문에 즐기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즐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소드 아트 온라인의 매력이기도 했다.
부정적인 견해라면 그만큼 기분을 전환할 수단이 있으니까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절망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운영자의 기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까.
실제로 최근에는 자살자의 소문이 전혀 들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공략을 포기한 플레이어는 전투에 관련되지 않은 다른 즐기는 방법을 이 게임에서 찾아내고 적막하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카야바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즉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내 아이템 스토리지에서 캠프 세트 일식이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암면과 눈이 쌓은 곳을 덮어 가리듯이 시트를 크게 펼치고 랜턴을 비롯한 무언가를 차례차례로 꺼내 늘어놓아 간다.
딱히 색다르게 아이템 스토리지의 보유 범위를 압박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미궁 구역 공략에 철야로 임하는 것은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솔로인 나에게 있어서 이런 아이템은 정말로 편리하다. 그것은 오렌지 플레이어였던 무렵부터 쭉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놀라지 말고 현실로 돌아와, 리즈. 여기는 가상 현실이지만.

「이 세계의 장점은 중량 제한이 있어도 스토리지에 격납되어 있는 한 아이템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야.」

할 수 없이 내 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보거나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리즈의 반응이 둔한 것 같다.
여기에 떨어진 경위를 생각하면 낙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나로서는 전장에서 실수 하나 없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최전선, 특히 플로어 보스전처럼 인원수가 혼잡한 전투에서는 얼마든지 실패할 가능성이 널려 있고, 그때마다 실수한 플레이어를 꾸짖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리커버리를 능숙하게 해내서 전선을 신속하게 다시 세울 수 있느냐다. 그렇긴 해도 그런 경험이 부족한 리즈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는 것도 어려운지도 모른다.

직공 플레이어는 그 보유하는 스킬로 몬스터와 전투를 반복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물론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비교하면 경험치 효율이 다소 떨어지지만 애초에 아이템 작성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직공 클래스 플레이어가 전투하러 나오지 않으면서 그런대로 레벨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길드에 소속된 직공 플레이어와는 달리 리즈 같은 프리 직공 플레이어는 자기 스킬에 사용하는 금속이나 소재를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사냥 필드로 나오는 일도 많다. 결코 전혀 싸울 수 없는 플레이어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진짜 전투 플레이어, 특히 공략파 멤버들과 비교하면 전투 경험에서 미치지 못한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으면 전투면에서 리즈 같은 후방 지원 플레이어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 법이다.
나는 그럴 생각으로 리즈를 후위에 배치하고 있었던 것이고, 리즈도 그 사정은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낙담하고 있는 것은 근본이 성실해서겠지.

그럼 어떻게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케어한다는 건 나한테는 너무 힘겨운 일인데.
스스로의 실태를 반성하지 않고 뽐내는 것도 곤란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어버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여하튼 우리는 추락사라는 궁지에서 벗어났다고는 해도 아직 탈출할 수 없는 구멍에 갇혀 있다. 실패를 후회하는 것보다 살아남는 방책을 짜내는 것이 우선 순위가 훨씬 높다. 어떻게든 리즈가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 백룡과의 전투에서 상황이 바뀌면서 함정에 빠진 나와 리즈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높은 곳으로부터의 낙하는 착지 자세를 잡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플레이어는 반드시 대미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산악 맵처럼 높낮이 차이가 큰 지형을 공략하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대형 보스급 몬스터가 상대라고 해도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는 억지로 돌진을 받아내는 것보다 리즈를 재촉해 회피에 전념해야 했다.

결국 나는 리즈의 전투 능력을 믿지 않은 것이다. 나 혼자라면 당황하지 않고 회피를 선택했을 상황에서 리즈의 존재가 머리를 스친 순간, 백룡의 돌진을 무력화시키려고 힘으로 맞서는 짓을 해버렸다. 냉정해지지 못하고 실수한 점에서 나 또한 아직 미숙하다.
그 결과가 함정에 떨어진 지금 상황이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나까지 낙담하고 있으면 직접적인 원인을 만들게 된 리즈가 더욱 더 낙담해버릴 테니 애써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텔레포트 크리스탈은 쓸 수 없고, 벽면을 올라가 탈출하는 일도 불가능한 원기둥 형태로 파인 이 구덩이에서 어떻게 탈출할지의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장래에 불안을 가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니니까 여기서는 강한 척 해둬야 한다. 안 그래도 풀이 죽어 있는 리즈에게 더 이상 부담을 줄 수도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스운 얘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살짝 시선을 돌리자 인간형으로 패인 얼빠진 낙하 흔적이 보였다. 나와 리즈가 떨어져 내려왔을 때 생긴 것은 아니다. 
이 구덩이에 떨어진 뒤 서로가 무사한지를 확인할 겸 크게 줄어든 라이프 게이지를 회복시키고 어떻게든 탈출할 실마리를 찾고 있었을 때 내가 계책을 궁리한 결과다.

《그때 내 뇌리에 하늘의 계시가 떠올랐어!》라는 기세도 겸해서 벽 타고 달리기에 도전했다가 보기좋게 실패했다.
도움닫기를 할 거리도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원기둥 형태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단순한 함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광대했다. 
그런 장소의 암벽을 나는 빙 돌아서 답파하려 했고, 당연히 꼭대기까지 달리는 거리는 상당한 길이가 된다. 
그 때문에 도중에 가속이 쇠약해지고 힘이 다해 굴러 떨어졌다.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낙하 대미지도 적었지만, 그 흔적은 어디의 만화일까 하고 생각하게 될 것 같은 훌륭한 인간형 낙하 흔적이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낙담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풀이 죽은 리즈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없을까 해서 익살꾼 노릇을 할 생각으로 저런 무모한 짓을 해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내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나한테는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키리토는 ……」

툭하고 무릎을 감싸 쥔 리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키리토는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상냥하게 대할 수 있는 거니?」

「상냥하다고? 내가?」

눈이 점이 되었다. 리즈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는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냥하다고? 그야 내가 매우 엄격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냥하다는 말을 들을 성격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고 말할 것도 없이 난 악인이라고 불리는 측의 인간이고.
아르고에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서 가능한 한 정당하게 보이도록, 그리고 게임 공략에 협조적으로 나오려고 노력할 생각이지만, 실태가 수반하고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건방진 녀석이고, 공략파에 비협조적인 망나니고, 사람과의 접촉은 최소한으로밖에 하지 않고 솔로로 미궁 구역에 들어가고 있을 뿐이고. 사실 내가 상냥하다면 웬만한 녀석들이 상냥하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무엇보다 상냥한 인간은 좋아서 죽고 죽이는 일에 임하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든간에 래핑 코핀 놈들을 사냥하기로 결심한 것은 나고, 그걸 위한 토벌대를 조직하고 이끈 것도 나였다.
이 세계에서 또 하나 죄를 저질렀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죄업을 쌓게 되는 걸까.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스구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한탄할까, 아니면 울까. 의외로 꾸짖어줄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에 살아 돌아가게 되면 전부 이야기하자.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살고 무슨 짓을 저질러버렸는지를.

「상냥해. 아까도 나를 감싸느라 죽을 뻔했잖아. 그런 사람을 상냥하다고 하지 않고 뭐라고 말할 수 있겠어.」

「너보다는 내가 레벨이 높으니까 내가 낙하 대미지를 받는 게 당연하잖아. 그게 생존률이 높고. 그냥 역할 분담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 거니?」

「어느 정도는.」

적재적소란 그런 거잖아.

「그럼 다시 말해줄게. 넌 상냥한 주제에 뒤틀려 있는 거야. 솔직하지 못한 녀석.」

「뭐, 뒤틀려 있는 건 부정하지 않아.」

거기서 마침내 조리가 끝난 수프를 컵에 따르고 리즈에게 건넨다. 건육과 향초를 사용한 초보용 요리로, 스킬 숙련도가 없어도 실패하지 않는 쉬운 것이었다.
요리 스킬은 배우지 않았으니까 맛은 기대하지 말라고 리즈에게 전해 두었지만, 고맙다면서 받은 리즈는 한 입 마신 뒤 후우 하고 안심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어서 다 만든 수프를 먹는다. 원래 공략하는 동안에 잠깐의 휴식을 위해 준비해 둔 아이템이라 맛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공복과 무료함을 달래는 것뿐이다.

그래도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히 맛있다고 할 수 있는 맛이었다. 어쩌면 리즈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미 밤도 깊어져 왔는데,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것은 정오 전이다. 장로의 긴 이야기에 백룡과의 전투, 그리고 이 구덩이에 떨어지고 나서 탈출을 대충 시험해 보는 와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공복은 최고의 조미료라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리즈가 요리 스킬를 배웠는지 묻는 것을 잊었다. 뭐 상관없지. 이미 준비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좀 아니니까.
리즈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내가 따뜻한 수프의 여운에 말을 멈추고 나서였다.

「저기 키리토, 왜 드래곤과의 전투를 오래 끌었어? 네가 진심으로 싸우면 순살할 수도 있었지 않아?」

「순살이라니, 그건 과언이야.」

리즈가 한 말에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 백룡은 확실히 나에게 있어서 고전할 수준인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즈가 말한 것처럼 순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상대라고 생각하고 싸우고 있던 것도 아니다.

「전투를 오래 끈 이유라. 리즈는 퀘스트 아이템 입수 조건을 마스터 스미스를 동행하는 것으로 추측했잖아. 하지만 마스터 스미스라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플레이어가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시스템적으로 그러한 직함이 있는 건 아니야. 그건 조건으로서는 약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고 계속 이야기한다.

「거기다 55층에서 받게 되는 퀘스트에서 스킬 컴플리트가 조건이라는 것은 게임 난이도적으로 너무 어려울 것 같았고, 실제로 오래 걸리고 있었어. 70층 이후의 퀘스트에서라면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계층의 퀘스트 난이도를 생각하면 퀘스트 달성 조건으로서는 대장장이 동행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듣고 보니 그렇겠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게 되면 키리토가 한 건 퀘스트 달성 조건을 채우기 위한 시행착오였다는 거니?」

리즈의 질문에 말 없이 수긍한다.
그 백룡은 퀘스트 보스로서는 약한 부류일 것이다. 55층의 필드 보스라고 생각해도 어딘지 조금 부족한 강함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 출현 방법에서 봐도 퀘스트 달성 조건의 열쇠인 것은 틀림없겠지만, 그에 비해 강하지 않다.
중층의 상위 플레이어 몇 명이 확실하게 사냥할 수 있는 레벨이고, 공략파의 톱 플레이어라면 솔로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는 레벨이라고 할까. 
리즈에게는 과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가진 이도류로 대표되는 레어 스킬을 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순살도 꿈이 아니다.

즉 그 백룡은 사냥하기 쉬운 편인 퀘스트 보스다. 실제로 리즈의 이야기로는 플레이어들 몇 조가 백룡을 사냥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드랍품은 새로운 종류의 금속이나 레어 아이템이 아니라 쓸모가 없는 쓰레기 아이템이나 새발의 피 수준인 콜이기 때문에, 도중에 조우하는 졸개 몬스터에게도 뒤떨어진다고 한다.
그것들을 감안하면 백룡은 단순한 일개 몬스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퀘스트 달성을 위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겠지.
물론 단순히 드랍률이 좁혀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퀘스트를 방치할 정도로 플레이어들이 단념하게 하는 저확률이라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게임 밸런스를 생각하면 매우 기묘하다.

거기서 내가 의심한 것이 퀘스트 달성 조건이 다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리즈가 말한 《마스터 스미스가 가세한 파티로 백룡을 해치운다》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해치우는 방법에도 어떠한 조건이 부과되고 있을 가능성이다.
예를 들면, 북쪽 마을에서 들은 정보 중에 《수정을 삼키는 용》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맵은 빙설과 수정으로 된 산악 지대이기 때문에, 용의 주식이 수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거기서 부위 결손 상태에 빠진 백룡을 해치우는 것으로 몸의 일부가 된 수정이 드랍되게 되거나, 혹은 브레스에 섞여 수정을 토해내는 것으로 아이템 드랍 조건이 생길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백룡의 공격 패턴을 장악하면 마무리는 대장장이인 리즈가 맡아주는 것으로, 《대장장이가 백룡을 해치운다》라는 조건도 채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거라도 맞고 있다면 감지덕지라고 할 생각으로.

「저기, 키리토, 정말 미안해. 키리토가 노력한 것들을 내가 전부 망쳐버려서……」

「설명이 부족했던 내 잘못도 있어. 너한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야.」

그때 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진심을 묻기 시작한 리즈는 두 손으로 움켜쥐듯이 들고 있던 컵을 놓고 앉은 자세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얌전한 목소리로 사과하는 모습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해져 와서, 나도 황급히 리즈를 달래는 말을 했다.
나도 말솜씨가 서투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제대로 설명해둬야 했다. 리즈의 실태는 리즈 혼자 짊어질 것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은 확실한 나 자신의 본심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서로 침묵해버린다.
곤란하군. 안 그래도 리즈는 낙담한 기색인데, 침묵이 오래 계속되면 쓸데없이 분위기가 무거워질 뿐이다. 나도 그런 거북한 분위기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으니 뭔가 손을 써야 한다. 이 자리에서 꺼낼 만한 자연스러운 화제로 뭐가 있더라? 아, 그러고 보니.

「맞아. 나도 너한테 사과할 게 있어.」

「갑자기 뭔데?」

내가 갑작스럽게 꺼낸 말에 리즈는 한 방 먹은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리즈는 놀라면 꽤나 어린애처럼 보이는군.

「네가 빌려준 검을 부숴버렸잖아. 나중에 변상할게.」

「아, 그거. 변상해주지 않아도 돼. 날 구해주려고 한 결과인걸. 그 덕분에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싼 거야.」

「그렇지도 않아. 그거 팔면 래그 래빗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될 돈을 벌 수 있잖아. 순간적이라 해도 앞뒤를 생각하지 않았어. 정말 미안해.」

벽에 꽂을 거라면 일루시데이터를 사용해야 했다. 오른팔을 리즈에게 내민 판단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검을 차는 허리띠 교차를 반대로 해뒀어야 했다. 그것이 결과론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너도 상당히 의리가 있구나. ……그래, 그렇다면 검을 변상하는 대신에 여러 가지를 들려줘.」

「그 정도로 용서해준다면 고맙긴 한데, 뭔가 듣고 싶은 거라도 있어?」

「당연히 많이 있지. 우선은 네가 왜 검을 하나밖에 가지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 확실히 망가졌다고 했었지? 그거 이번처럼 내구치 한계를 넘어서 부숴버린 거니? 설마 정비 부족이었던 건 아니지?」

「아니, 정비한 바로 직후였어. 장비품은 모두 만전 상태로 갖추고 있기도 했고, 이번 같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도 없었어.」

「그럼 어째서?」 

질문을 받고 무심코 우물거렸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 다음 내용을 이야기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있다. 리즈는 검 대금 대신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자백하는 것을 꺼려도 추궁하지는 않겠지. 다소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이야기하게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리즈의 사람됨을 이해하고 있었다.

「키리토?」

침묵하는 나를 보고 불안해졌는지 표정이 흐려지는 리즈.
침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아마 내 약함 때문이려나. 혼자 마음속에 담아둘 수가 없었다. 단지 그뿐이다.

「리즈는 《암 블래스트》라고 들은 적 있어?」

「언뜻 들어서 알고 있어. 소드 스킬을 서로 부딪힐 때 무기의 무른 부분을 치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부위 손상을 일으키는 고등 기능이잖아. 효과 분류로 치면 패링의 상급 파생 기술이지만, 소드 스킬 시스템에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외 스킬이라고 불리고 있는 거.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지만.」

「판정이 매우 엄격해서 실전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니 본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해. 암 블래스트는 원래 소드 스킬급 기술을 사용하는 몬스터 대책용으로 개발한 기술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플레이어끼리의 전투에도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어.」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리즈의 안색이 나빠진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

「그건 즉……검이 부서진 건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이 원인이라는 거니? 결투인 건, 아니지?」

「유감이지만 진짜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어. 거기서 내 검은 암 블래스트에 의해 부숴졌지. 정말이지, 멍청한 거에도 정도가 있다니까.」

「멍청하다니 어째서?」

「암 블래스트 기술을 개발하고 공개한 게 나였거든. 개발했다기보다는 발견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암 블래스트가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대 몬스터용 시스템외 스킬이라고 강조해서 정보를 흘렸다. 원래 암 블래스트는 통상의 플레이어 전투, 즉 결투에서 사용해도 될 기능이 아니다. 실력을 시험하는 곳에서 일일이 이기기 위해 무기를 부순다는 건 명백한 매너 위반이다.
플레이어가 정성을 들여 강화한 무기를 부수는 것은 공략에 불리하게 작용되기 때문에, 대 플레이어전에서 암 블래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 사항에 가깝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몬스터에게만 사용하기를 바랐다. 그런 내 소망은 덧없이 져버렸지만.

「암 블래스트 개발자가 키리토라는 것도 놀랍지만, 네 검을 부순 상대는 설마 래핑 코핀……」

「맞아. 길드 《래핑 코핀》 단장인 PoH. 그놈에게 당했어.」

리즈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져 갔다.
준비는 시간을 들여 비밀리에 진행했다고 해도 래핑 코핀 토벌전을 끝낸 뒤에는 대대적으로 발표했으니, 리즈도 내가 최근 래핑 코핀을 쳐부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래핑 코핀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후회했다.
지금 리즈는 표정이 창백해져 있고, 몸이 굳어져 떨고 있다. 그 공포가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우울하다.
살인 집단인 래핑 코핀일까, 아니면 그놈들과 싸운 나일까.

암 블래스트는 나만의 유니크 스킬이 아니다. 시스템에 없는 순수 기술적인 스킬인 만큼, 가능성에 한정하면 모든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성공 판정을 끌어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적을 뿐이다.
적이 사용하는 소드 스킬 예측, 그 검의 궤도에 맞춘 정확한 소드 스킬 선택, 무기의 무른 부분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검격을 맞출 수 있는 기량, 그리고 그것 모두를 가능하게 할 만한 간격과 타이밍 판별.
이것들을 한순간에 모아야 마침내 암 블래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암 블래스트는 나만의 스킬이 아니니까 당연히 다른 플레이어들도 사용할 수 있다. 그게 하필 살인을 저지르는 PoH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싸움은 무승부다. PoH가 내 검을 부순 것처럼, PoH의 《메이트 초퍼》도 내 《일루시데이터》로 쳐서 부쉈으니까. 하, 꼴좋군.

그래도 후회는 남는다.
그때 그대로 날리는 칼로 놈의 목을 치고 있었더라면--.
놈의 HP바를 날려버렸다면--.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같은 수만큼 그런 것을 생각하는 내 냉혹함에 몇 번이나 자기 혐오를 반복했던가.
정말 싫어지는군. 살인 길드라는 간판을 내건 미치광이들도, 그리고 추레한 나 자신도 싫어진다.

「……혈맹 기사단은 래핑 코핀 토벌전에는 참가하지 않았어. 키리토가 참가시키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내 얼굴을 보는 게 무서운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리즈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궁금한 것을 말했다.
매우 자세하군, 정보원은 아스나인가? 회담 장소에 있었던 건 히스클리프와 나뿐이다. 거기서 결정한 것을 부단장인 아스나는 히스클리프한테서 들었겠지. 거기서 리즈한테 정보가 흘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건 딱히 상관없다. 히스클리프가 노출되면 곤란해질 것까지 이야기할 리가 없을 테니.

혈맹 기사단에서는 그 두 사람이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있다. 결단하는 횟수만큼이라면 공략파를 주도하는 아스나가 위지만, 최종적인 결정권은 히스클리프에게 있기 때문에, 나는 아스나를 통하지 않고 히스클리프에게만 이야기를 통했다. 공략파의 전력을 빼내는 이상 히스클리프에게는 최소한의 이야기를 통해 둘 필요가 있었고, 토벌 실패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뒤처리에는 공략파 필두로서의 히스클리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스나에는 그다지 들려주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지만.

『혈맹 기사단은 토벌전에 참가시키지 마라』라는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혈맹 기사단 내부 사정을 생각하면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독단이라는 형태는 피하고 싶었던 걸까?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숨기고 입을 닫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번 건은 최종적으로 아스나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한 거겠지. 어느 단계에서 아스나에게 래핑 코핀 토벌전의 뒷사정을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토벌전을 끝낸 뒤에 한 공식 발표의 전후이려나.
래핑 코핀에게 계획이 새지 않도록 쭉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작전이었던 만큼, 히스클리프도 정보를 은닉하는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었을 테니 심복인 아스나라고 해도 가볍게 흘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스나는 리즈를 소개해줬을 때도 쭉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 같았지.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신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래핑 코핀 토벌 준비로부터 실행까지 한 나한테 불평하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혈맹 기사단을 참가시키지 않았던 것은 공략을 위해서야. 혈맹 기사단은 공략파의 기둥이자 모든 플레이어의 희망이니까. 말하자면 신성한 존재라 할 수 있지. 그 신성한 존재가 피 투성이가 되면 진심으로 응원할 수 없게 되겠지? 거기다 공략파 전체의 사기도 떨어질 거야. 그래서 래핑 코핀 토벌에서는 제외했어. 그 손을 더럽히는 일은 달리 적합한 녀석이 하면 돼.」

「그게 너라는 거니? 토벌 참가자 중에서 이름을 밝힌 건 키리토뿐이었잖아. 너한테 그런 역할이 걸맞는다는 얘기야?」

「전 베타 테스터, 전 오렌지 플레이어, 군 녀석들한테는 비터라 불리며 미움받고 있고, 공략파 입장에서는 솔로로서 어정어정 돌아다니는 밉상인 녀석이 나야. 그런 주제에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도 굴지의 레어 스킬 보유자이자 고레벨 플레이어이기도 하지. 싸움에 관해서는 날 능가할 녀석은 별로 없어. 그러니 래핑 코핀 토벌에는 안성맞춤이었지.」

예외라면 히스클리프 정도겠지. 내가 일대일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건 히스클리프 정도다. 그 녀석과 직접 싸운 적은 없지만, 실제로 결투를 하게 되면 틀림없이 내가 불리해진다.
히스클리프의 신들린 듯한 예측 및 공격과 수비가 모두 우수한 스킬인 신성검. 이 두 가지를 돌파하고 클린 히트를 먹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반복해도 히스클리프에게 내 검이 닿는 이미지는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공략파 최강이란 간판은 장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히스클리프 이외에도 아스나를 필두로 뛰어난 전투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는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그 누구가 상대라도 일대일로 한정하면 내 우위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내가 지닌 스킬과 레벨은 반칙급이었다.
원래 공략파 중에서도 돋보이는 레벨을 지닌 나다. 그리고 이도류는 히스클리프의 신성검과 함께 명백하게 일탈한 성능을 지닌 스킬이다. 적어도 이 두 가지 스킬과 견줄 만한 스킬이 발견될 때까지는 나와 히스클리프 2강 체제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래핑 코핀 토벌을 주도하는 역할에 적합했던 것이다. 전투력으로 한정하면 이 세계 굴지의 플레이어이자 이제 와서 인망도 무엇도 없는 추레한 솔로 플레이어. 무엇보다 PK 전과를 지닌 내가 래핑 코핀이라는 범죄자 집단을 상대하기에 적임이었다.
PK조차 주저하지 않는 플레이어가 토벌대에도 있다는 압력이 놈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사냥당하는 측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만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래핑 코핀 놈들을 상대로 호각의 승부를 낼 수 없을 것이다. PK를 즐기는 강자이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고 자부하는 래핑 코핀의 정신적 우위를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놈들이 투항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PK를 각오하고 싸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견제하는 의미만으로도 내 명성은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투항을 기대할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쌍방 모두 사망자 없이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꿈 같은 이야기라 해도 그런 꿈을 꾸고 싶었다는 것은 내가 물렀다는 것이다.
래핑 코핀 토벌에 참전하고 그 싸움 속에서 죽어 간 플레이어들에게는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모자라다. 내 계획에 찬동하고 협력했다가 돌아올 수 없게 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플레이어가 그 싸움에서 죽었다.

나 혼자서 쳐부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 크리스마스의 밤, 썩어 문드러진 교회에서 PoH 일당과 대치한 것으로 나 혼자서는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면서도 확실하게 토벌 계획을 진행시키면서 놈들의 근거지나 구성원 수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다행이었던 것은 클라인과 《풍림화산》, 디어벨과 《푸른 대해》, 그리고 슈미트를 필두로 하는 《성룡연합》의 협력을 이렇다 할 노고 없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래핑 코핀의 배가 되는 토벌 인원수를 편성하는 것에 난항을 겪지도 않았다. 거기다 공략파의 인격자이자 실력자인 에길의 협력도 얻을 수 있어서 충분한 전력을 갖출 수 있었다.

내가 PoH를 상대하고, 클라인과 에길이 각자 자자와 조니 블랙을 상대했다. 내가 앞장서서 돌입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 정리는 디어벨에게 부탁했지만, 디어벨은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맹렬하게 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 긴박감은 플로어 보스전 이상이었다. 예리하고 차가운 감각이 계속 등을 달렸고, 열광과 광소가 플레이어의 정신을 침범하려고 소리없이 다가오는 광란의 연회라고도 할 수 있는 최악의 전장이었다.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다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그 싸움의 결말은 이미 발표되어 있다. 최종적으로 PoH 녀석을 놓치긴 했지만 간부급을 포함해 래핑 코핀 구성원 대부분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일부는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 래핑 코핀은 괴멸했다고 평가해도 문제 없을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래핑 코핀에게 승리했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남자, PoH를 잡을 때까지 나와 놈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놓친 PoH의 동향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유일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후환인 만큼, 놈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 그래도 일단 아인크라드에 만연하고 있던 악의의 연쇄는 막을 수 있었다.
PoH라고 해도 충분한 손발의 수가 없으면 대대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범죄를 선동하고 있던 악의 정신적 지주인 래핑 코핀이 괴멸하고 그 우두머리가 행방불명됐기 때문에, 오렌지 길드의 활동도 자연히 축소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를 넘은 범죄에는 공략파도 단호한 결의로 대처하겠다는 자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크다. PK 같은 중범죄에 대한 억제력으로서의 효과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죽지 않는 한, 나 자신의 존재가 오렌지 플레이어에 대한 경고로서 계속 작용되겠지. 대대적으로 내 이름을 퍼뜨린 것은 눈에 거슬리는 범죄를 저지르면 처형인인 《검은 검사》가 네 목을 사냥하러 갈 거라고 무언 중에 위협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마치 도시 전설이나 나마하게(*주 : 악한 사람을 혼내주는 일본 요괴) 같다며 실소해버릴 것 같지만, 의외로 노린 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래핑 코핀의 악명은 아인크라드를 석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쳐부순 내 악명도 또 천리를 달릴 것이다. 아르고한테 부탁해 진짜로 그런 소문을 흘려 볼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나마하게 검사 키리토》 탄생의 가능성을 은밀하게 검토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런 얼빠진 생각을 간파한 것 같은 타이밍에 리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키리토는 강해. 아스나가 자기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했던 것도 알아. 하지만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한 거니? 그런 일까지 해야 했던 거니?」

떨리는 목소리는 리즈의 감정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리즈가 품은 심정의 정체까지는 몰랐다. 분노일까, 두려움일까, 아니면 동정일까.
나는 그것을 모르는 채로 대답한다.

「이도류가 필요했었어. 사망자를 내지 않고 구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스킬이 이도류였지.」

단적으로 말해서 나다.
내 대답에 괴이쩍어하는 리즈의 모습을 보고 결심하고 나서 아이템 인벤토리를 불러낸 뒤, 거기서 검 한 자루와 스로잉 픽을 오브젝트화했다. 둘 다 특수 사양의 플레이어 제작품이다. 그것을 리즈에게 건네주고 한 걸음 물러선다. 마치 피고석에 서 있는 것 같은 심정으로 리즈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네준 검과 픽을 본 리즈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그 큰 눈동자를 크게 뜨고 그 다음에 나를 맹렬하게 노려본다. 방금전까지의 어딘가 약한 상태가 아닌 그 눈에는 열화 같은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키리토, 너 《이것》이 대장장이에게 《금기》라는 걸 알면서 만들게 한 거니?」

「그래. 그림록에게 고집을 부려서 만들게 했어. 그림록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정확히는 그림록은 그 검을 만드는 거에 반대한 게 아니라, 내가 그 검을 사용하는 거에 반대했어.」

「반대하는 게 당연하지! 마비 효과를 부여한 한손검에 스로잉 픽이라니! 이런 건 사람에게――플레이어를 노릴 의도가 없으면 굳이 만들 일도 없다고!」

리즈의 분노는 당연했다.
직공 클래스라는 통칭은 통칭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무기 제작자로서의 긍지가 있다. 자기들이 만들어내는 무기나 방어구가 아인크라드 공략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들이 무기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지, 결코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비 효과 같은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무기는 아인크라드에는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주요 무기로서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특수한 무기는 모든 공격 수치가 낮아서 사냥에는 적합하지 않고, 거기다 내구치 한계가 매우 낮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정비하고 있어도 무기가 서서히 소모되고 마침내 소멸하게 된다. 거기다 유효한 상태 이상을 일으키기에는 몬스터의 상태 이상 내성이 너무 높아서 거의 효과가 없다. 대미지는 주지 못하고 내구치는 최저에다 상태 이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다면 그런 특수 무장이 유행할 리가 없다.

――단 하나, 범죄자 길드 놈들을 제외하고.

래핑 코핀 안에서는 특히 조니 블랙이 마비독을 지닌 스로잉 픽을 즐겨 사용하고 있던 것처럼, 플레이어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는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상태 이상계 무장의 특징이기도 했다.
게임상의 죽음이 현실의 죽음이 된 현재, 직공 클래스 플레이어가 이러한 특수 무장을 피하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하다. 자기가 만들어낸 무기로 살인이 벌어진다는 것은 악몽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직공 플레이어는 이러한 무장이 완성되어버렸을 경우 시장에 흘리지 않고 그대로 폐기해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런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는 범죄자입니다》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리즈는 이렇게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범죄자 플레이어라고 의심받을 장비를 가지고 다니고 있는 것, 무엇보다 그 장비를 의도적으로 직공 플레이어에게 만들도록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림록이라는 사람도 용케도 네 의뢰를 받아줬구나. 설마 위협한 건 아니지?」

「설마, 나도 그렇게까지 귀신은 아니야. ……그림록과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 인연으로 내 고집을 들어주게 했을 뿐이지.」

「대장장이에게 금기를 범하게 하면서까지 마비독을 지닌 무기를 만들게 하다니 보통 인연이 아니잖아. ……범죄자 플레이어를 감옥에 던져 넣기 위해 구속하는 수단으로서의 마비 특화 무기. 과연, 확실히 이도류 사용자인 너라면 잘 다룰 수 있겠네.」

리즈가 빈정거리지만 나는 그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 있다고 해도, 내가 반대하는 그림록에게 억지로 만들게 한 것은 그야말로 외도의 소행이니까. 사람을 노릴 칼날을 만들라고 그렇게 강요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림록은 나를 원망했을까? 왜 그런 일을 시키는 거냐고 원망했겠지.

래핑 코핀에는 공략파와 견줄 만한 강력한 플레이어가 다수 소속해 있었다. 레벨만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공략파 상위에 들어갈 것 같은 강자도 있었겠지. 아마 그들은 이 아인크라드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레벨링을 추구한 집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략파의 레벨이 특히 높기 때문에 중층 플레이어나 하층 플레이어는 공략파의 방식이 가장 효율이 좋은 레벨 올리기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 효율이 가장 좋은 레벨링을 한다면 미궁 구역 탐색을 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지의 맵에 도전하거 할 수 없다. 신중함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미궁 구역 탐색은 그만큼 시간당의 경험치 효율을 떨어뜨리니까.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레벨링은 어떤 방법일까.
간단하다. 시간 효율이 가장 좋은 곳에서 오랫동안 사냥을 하는 것뿐이다. 공략파가 통과하고 공략 정보가 모인 고효율 몬스터가 모여 있는 사냥터. 그런 조건을 지닌 구역을 찾아 오로지 적을 사냥할 뿐이었다.
거기다 아인크라드는 광대하기 때문에 공략파조차도 모르는 레벨링 스팟이 존재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성룡연합은 그런 사냥터를 몇 군데나 독점하고 있지 않냐는 소문이 뒤에서 나돌고 있고. 풍문 피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평상시가 평상시니까 그런 점에서는 손해보고 있는 길드다.

아인크라드에서는 부정기적으로 몬스터의 출현 빈도나 종류가 바뀌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변화는 어디까지나 완만한 수준이다.
내가 이 게임 개시 당초에 생각하고 있던 《공략에는 참가하지 않고 오로지 공략이 끝난 맵에서 안전한 사냥을 하는》 자들이자, 그 중에서 특히 효율이 좋은 방법을 선택한 것이 래핑 코핀 놈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교활한 사냥 방식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래핑 코핀처럼 계층 이동에 제한이 생기는 오렌지 길드의 구성원들이 공략파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강함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 우리가 상대한 것은 그러한 적이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감옥 에리어로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쌍방에 사망자도 나왔던 것이다.
마비 성공률은 보조 무장인 투척계 무기보다는 검이나 창 같은 주무장을 사용하는 쪽이 훨씬 높다. 그러나 특수 사양인 무기는 수많은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서로 치고 받으면 곧바로 내구치의 한계가 와서 소멸하게 된다.
PK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놈들을 상대로 무기를 잃으면 그 말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무기로 접전하는 사이에 보조 무장에 의지하는 싸움 방식밖에 취할 수 없지만 그 예외가 나였다.

이도류.
양손에 무기를 장비할 수 있는 나라면 한 손에 주요 무기를, 다른 한 손에 마비 효과를 부여한 보조 무기를 잡고 싸울 수 있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돌진하고 닥치는 대로 마비 효과를 가하는 것으로 래핑 코핀의 무력화를 꾀했던 것이다.
검의 내구치 한계가 찾아올 때마다 아이템 스토리지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 계속 싸웠다. 최종적으로 몇 개의 검을 잃었는지는 세고 싶지도 않다. 완전히 어딘가의 검호 쇼군(*주 : 아시카가 요시테루)이라도 된 심정이다. 검호 쇼군은 말로가 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겹쳐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PoH를 상대로 마비검으로 싸울 여유는 없었다.
PoH는 도대체 어디서 그만한 기술을 터득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교활하고 세련된 검술 사용자였다. 암 블래스트를 전투 도중에 성공시켰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아인크라드에서 손꼽을 만한 실력자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토벌대는 생포를 전제로 했고, 래핑 코핀은 처음부터 우릴 죽일 생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PoH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차이는 너무나 컸다.

세 자리수에 임박하는 수의 플레이어가 대규모로 좁은 동굴 안을 무대로 싸웠던 만큼 그 혼란의 규모도 상당했다. 그 때문에 중요 핵심인 PoH를 놓쳐버린 것은 명백히 내 실태였다. ……적어도 나에게 놈의 HP바를 완전히 날려버릴 기개만 있었다면 놓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상대로 서로 베고 있다는 의식이 어디선가 내 검근을 무디어지게 하고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대로 PoH에게만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더라면 결과도 달라졌겠지. 그러나 나는 래핑 코핀 토벌을 호소한 몸으로서 찬동해준 플레이어들을 가능한 한 무사히 돌려보낼 의무가 있었다. PoH와의 일대일 대결에만 얽매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판단이 길을 낼 것인가 흉을 낼 것인가. 모든 것은 앞으로 PoH가 움직이기 나름이다. 될 수 있으면 PoH는 게임이 클리어될 때까지 숨어 있는 채로 얌전히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모르겠어. 난 널 모르겠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야 래핑 코핀은 위험하기 그지 없는 암적인 집단이지만 왜 네가 그렇게까지 기를 쓰면서 놈들과 싸워야 하는 건데?」

리즈의 눈에는 더 이상 분노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있는 것은 불가해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의심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앞에 둔 체념 비슷한 피로였다.
나와 같은 나이라고 한다면 현실 세계의 리즈는 고교생이다. 그런 오염된 진흙처럼 추레한 사상을 지닌 놈들과 상관 관계를 가질 리가 없다. 살인을 권리라고 공언하는 악의로 가득 찬 플레이어가 모여 혀를 낼름거리며 대기하고 있는 암담한 세계에 얽혀도 될 인간이 아니다.
기꺼이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미쳐 있는 놈들도, 그런 놈들에게 검을 겨누면서 멸하려 하는 나 같은 인간도 이해할 수 없겠지.

……너무나 먼 곳까지 와버렸군.
이 아인크라드에 갇히기 전, 평범한 14살 짜리 중학생이었던 나는――키리가야 카즈토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한편,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키리가야 카즈토가 아니라 키리토가 필요하다고 냉철하게 판단해버리는 자신이 싫었다.
게임이라고, 롤 플레이라고 결론을 짓는 것만으로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은 이 세계의 죽음이 현실 세계의 죽음이 아니라고 완고하게 맹신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감미롭고――무서운 안식이었겠지.

――여기가 내 현실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리고 죄도 벌도, 그 모두가 내 현실.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부정해버리면 다음은 타락해 갈 뿐이다.
소드 아트 온라인은 우리 플레이어들의 인생을 완전히 비틀어버렸지만, 그것은 인간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렌지 길드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것처럼, 살인 길드라는 미치광이 집단을 조직한 PoH처럼, 그리고 그런 놈들을 이 검으로 베어 쓰러뜨리려고 한 나처럼――인간성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일그러뜨려버렸다. 그런 인간이 타인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습기 그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리즈에게 원하는 것은 리즈의 이해와 납득이 아니고, 실수로라도 내가 그런 것을 바라서는 안 되었다.

「그게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야.」

「책임?」

「그래. 범죄자 플레이어들이 활개치게 된 원인은 틀림없이 제1층에서 내가 저지른 PK에 있어. 그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범죄에 대한 자제가 느슨해졌지. 거기다 시스템이 준비한 억제력인 오렌지의 낙인도 빠른 단계에서 내가 해소할 수단을 발견해버렸어. 그래서 일부 플레이어의 윤리관이 완전히 붕괴했고. 지금 현재 살아남아 있는 플레이어가 7천 명 정도던가. 그 중에서 1할을 넘는 플레이어가 오렌지나 전 오렌지라고 불리고 있는 건 아무리 뭐라 해도 이상하잖아.」

총 인구에 대한 범죄자의 비율이 터무니없게 되어 있다. 물론 여기는 현실 세계와는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할을 넘는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숫자다.

「……이상하다면 이런 세계가 이상하잖아. 탈출할 수 없는 데스 게임에 던져진 인간, 그 중 얼마나 되는 비율이 범죄로 몰리느냐의 데이터는 아무도 가지지 않았으니까 의식하는 것도 당연하잖아. 무엇보다 오렌지 플레이어의 총 수는 소문일 뿐이니까 신빙성은 어디에도 없어.」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방아쇠를 당긴 건 나야. PoH가 단호하게 말하더군. 내가 자기들에게 있어서 《그 분야의 선배》라고. 그때 나는 전혀 반박할 수 없었어……」

너와 나는 동류라는 말을 듣고 구역질이 났다. 웃기지 말라고 생각했지만 부정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아무리 말해도 예전에 저지른 내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그래서 네가 그렇게 싸운 거니? 범죄자 플레이어가 늘어난 것은 네 책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나한테는 매우 중요한 이유야. 놈들과 같은 플레이어 킬러로서 나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울 의무가 있어. 그것이 범죄자 플레이어에게 당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으로 책임을 질 방법이었으니까.」

「바보……!」

공기를 날카롭게 찢는 날카로운 외침이 울렸다.
그 성탄 전야의 대치를 떠올리면서 자조로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지만, 리즈의 비명 같은 외침에 허를 찔린 것처럼 굳어져버린다. 아니, 오히려 외침과 동시에 뛰어들 것 같은 기세로 리즈가 다가왔던 것에 놀랐다고 할 수 있으려나.
싱숭생숭하게 독백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리즈한테 바로 땅바닥에 넘어뜨려진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위험한 짓을 하는군. 잘못하면 리즈의 커서가 오렌지화되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난폭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자리에 큰 대자로 넘어졌고, 리즈는 그런 내 가슴팍을 잡을 기세로 그대로 밀어붙여왔다.
무슨 짓이냐고 항의할 틈도 없었다. 항의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만큼 리즈의 목소리는 절박하면서 여유가 없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리즈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한 없이 흘러넘쳐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내 입을 봉하기에는 충분했다. 분노와 분함으로 얼굴을 붉히고 일그러뜨리는 리즈의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키리토는 바보……! 키리토는, 키리토는 그런 놈들과는 달라……!」

「리즈?」

「책임이라니, 그건 거짓말이야. 난 용서 못해. 아니,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키리토가 금기시된 검을 사용한 것도, 래핑 코핀 토벌대를 조직한 것도, 하물며 같은 인간인 플레이어를 벤 것도……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래, 그걸로 됐어. PK――살인은 해서는 안 돼. 용서해서는 안 돼.」

그게 정상이야, 리즈.

「아니야!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건, 왜 네가 그렇게까지 책임을 져야 하냐는 거야! 그렇게 될 때까지 널 몰아붙여야 할 이유는 없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런 건 네가 아니어도 되잖아! 이 세계도 어른이 있으니까 그런 위험한 놈들을 너 한 사람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잖아! 아이가 그런 일을 하게 두지 말라고!」

그것은 리즈의 통곡 그 자체였다.
리즈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을 죽인 내 죄도, 책임을 지려는 독선적인 결의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고 슬픔만을 반복하는 이 불합리한 세계를 향한 한탄 그 자체이자 그 때문에 나온 외침이었다.

《모두가 괴로운 마음을 품고 살고 있는 이런 세계에 갇혀서 당연하다는 듯이 웃고 있을 수 있는 녀석은 없어》.

긴 시간을 이 세계에서 보내면서 아인크라드의 규칙에도 완전히 순응하고, 마침내 이 모형정원 세계에 안주해버리듯이 순조롭게 생활 기반을 쌓아 올려 왔다. 여유도 생겼다. 그래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가 미소 안쪽에 피폐함과 체념을 숨기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리즈도 예외가 아니다. 공략파 보조를 선택한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더욱 품는 두려움도 있겠지.

그들은 전투 스킬 연구를 희생하고 서포트 스킬을 익힌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게임 클리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선택이 따라온다.
우리 공략파는 자신들의 손으로 이 게임을 끝내겠다는 동기 부여와 날마다 진행되는 공략에 호응을 얻을 수 있지만, 직공 클래스 플레이어에게는 그것이 없다. 어쩌면 공략파 이상으로 진행되지 않는 공략에 초조해하며 불안을 더해가는 밤도 있겠지.
현실 세계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장래를 우려하며 비탄에 저물면서――.
모두가 불합리를 감수하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싸우고 있다. 리즈의 외침은 그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하는 듯한 애절함과 한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나를 불쌍히 여긴 것이리라. 아니면 리즈의 상냥함일까.

리즈의 분노와 눈물을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한테는 과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없다. 검과 몬스터 앞에는 모두가 평등한 검사에 지나지 않고, 돌과 철로 만들어진 성이 전부인 다른 세계다. 모두가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만으로 필사적인 세계, 그것이 아인크라드. 불합리를 한탄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었다.

「……리즈. 내가 스스로 결심한 거야.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이 세계에서 사는 한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언젠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한 인간으로서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 때문에 강제로 하게 된 것도 아닌,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해서 한 거야. 그러니까 리즈, 네가 그렇게까지 화내줄 필요는 없어. ――하지만 고마워. 나를 위해 울어줘서.」

「하지만……하지만 이런 건 너무 하잖아. 왜 그런……. 우우, 키리토, 키리토……!」

아마 리즈 본인도 자신 안에서 솟구쳐 온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리즈는 멈추지 않고 넘쳐 나오는 눈물을 닦을 틈도 없이 나한테 달라붙듯이 몸을 맡기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누르고 그대로 오열하면서 우는 리즈의 모습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아픔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내 이야기 때문에 울게 된 건데 거기서 내가 위로한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본래라면 리즈의 친구인 아스나라도 부르러 달려가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약하게 오열을 반복하는 리즈를 이대로 놔두기도 곤란하고――.
결국 잠시 주저한 뒤, 리즈의 등에 살짝 오른팔을 돌리고 규칙적으로 쓰다듬고 왼손은 리즈의 머리카락에 달래듯이 살짝 얹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리즈에게 전해지기를 빌면서.

정말로 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즈.
아무리 내 손발이 질퍽거리는 진흙에 옭아매인다 해도, 날마다 중력의 멍에가 늘어나 가도, 내 게임 클리어를 갈구하는 마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싸울 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문제는――없다.



내 약함이 리즈를 울렸다.
래핑 코핀 토벌을 자세히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고, 이야기하지 않고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백해버린 것은 그날의 싸움으로 다시 PK를 저질러버린 죄업에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마음에 품은 죄악의 일단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토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규탄하고 재판하기를 바랐다.
그런 내 약함과 미혹이 나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고, 그 싸움과 상관없었던 리즈의 눈물로 이어졌다.

일 년하고도 반 년 이상 전――.
오른손에 쥔 검이 처음으로 사람을 찔렀고 그 사실을 자각한 밤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겨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사람을 베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제1층에서 저지른 PK 이후로 후회에 후회를 거듭해 왔지만, 그런데도 래핑 코핀을, PoH를 잡기 위해 플레이어끼리 죽고 죽이는 일에 뛰어들었다. 필요한 일이라고 나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미혹 같은 건 없다고 필사적으로 믿어버리고.

그리고 나는 또 PK란 죄를 저질렀다.
궁지에 몰린 동료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정신이 들자 나는 이 손으로 사람을 베어 그 인생을 끝내버리고 있었다.
그것도 두 명이나.

래핑 코핀 토벌전으로부터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허세는 결국 허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클라인도 에길도, 혹은 디어벨이나 슈미트도 내가 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아인크라드를 석권한 래핑 코핀의 위협은 더는 간과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올라 있었으니까라며.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내 손으로 토벌대를 조직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었을 생각이었다.

싸움이 끝나도 내 등에 날마다 겹겹이 쌓여 가는 원망의 중량감이 확실하게 내 마음을 침식해 간다.
내가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래핑 코핀 구성원을 죽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저지른 PK에 비해 받는 대미지가 현격히 적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면서 죄업의 중량감에 눌려 반복되는 몬스터와의 싸움 속에서 죽으려고 소극적인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PK 가능성을 알면서도 래핑 코핀 토벌전에 임한 이번에는 무거운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디선가 결론을 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악몽이었다. 나는 이 변화를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의미로 이 세계에 익숙해져버리고 있는 자신을 자각한 순간, 핏기가 싹 가셔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다. 분명 그때의 나는 얼굴을 새파랗게 하고 떨고 있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 울어준 리즈의 마음이 기뻤다. 그것은 검과 몬스터와 인간의 악의의 힘에 대책 없이 끌려가는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상냥함이었으니까.
당연한 것으로 화를 내고, 한탄하고, 그리고 웃을 수 있다. 그렇게 올곧은 리즈의 천성은 청량함 그 자체라서 매우 마음이 편하다. 아스나가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리즈에게는 그만한 매력이 있다. 동성에게도, 그리고 이성에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빛을 발하고 있는 소녀였다.

그런 리즈는 지금 내 가슴에 몸을 맡긴 채로 울면서 매달리다 잠들어버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설산을 답파한 피로가 있고, 백룡을 상대로 전투도 벌였다. 거기다 함정에 빠져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 같은 깊은 함정에 뛰어들게 되었다. 최악의 사태가 거듭된 것처럼 함정 밑바닥으로부터 탈출할 수단도 없이 갇혔다는 사실은 리즈의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결정타로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아버렸으니까 팽팽해진 긴장의 실이 끊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정말로 나도 리즈한테 결정타를 날리는 짓을 저질러버렸다. 알고 있지만 참으로 배려심 없는 남자다. 나 자신을 환멸하는 것도 도대체 몇 번째일까. 이제 질려버릴 정도다.
리즈의 부드러운 복숭아색 머리카락에 시선을 내리고 천천히, 그리고 몇 번이나 어루만진다. 빗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그런 물건을 준비하고 있을 리도 없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빗을 사용해서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의미가 있긴 할까? 아니, 어쩌면 남자인 내가 모르는 여자의 세계의 기 보고라든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얼빠진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참 태평하구나.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온화한 기분으로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템 스토리지에서 침낭를 준비해 리즈한테 사용할까 생각했지만, 울다가 지쳐 잠들어버린 리즈를 깨울 수도 없었다. 거기다 나 자신이 피부의 그리움에 굶주려 있었는지 지금은 리즈한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리즈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밤은 이대로 놔두자.
발칙한 짓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 이성의 가슴에서 잠든 리즈도 방심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이 크긴 하지만. 오히려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말이다.

리즈의 손이 내 옷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깨우지 않고 떨어지기가 어렵다고 재차 변명을 반복하고 그대로 힘 없이 눈을 감아버린다. 리즈를 안은 따스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 세계에서는 타인의 숨결도 심장의 고동도 거의 느낄 수 없고, 유일하게 사람의 삶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오감 센서, 즉 체온의 따스함이었다. 나도, 그리고 어쩌면 리즈도 이 따스함을 쫓아 오늘이라는 날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나도 마침내 졸려졌다. 머리가 멍해져서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리즈와 마찬가지로 나도 오늘은 긴장의 연속이었는지 평상시보다 잠이 깊어질 것 같은 기색에 완전히 저항할 의지가 약해져버리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내일 리즈가 화를 내면 사과하자.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변명도 안 되는 변명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바로 내 의식은 강한 졸음에 져서 암전해 갔다――.



리즈. 넌 날 위해 화내고 울어주었어. 정말 기뻤어.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 받을 자격이 없어.
네가 왜냐며 한 질문에 나는 의무라든가 책임이라든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였다. 물론 그건 내 본심이고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인 길드 토벌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무서웠으니까, 내가 놈들에게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만나고 마음을 주고 받은 소중한 사람들이 살인 길드 놈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무서워서 밤에도 잘 수 없게 되었다. 친구가 소중히 여기고 있던 동료가 래핑 코핀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그 녀석까지 놈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상상해버렸을 때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진심으로 래핑 코핀 놈들에게 공포를 느꼈고――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 겨울날, 썩어 있는 교회에서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분노에 맡기고 놈들과 대치했다. 놈들과 암투를 계속하는 도중에 말려들게 해버린 소녀도 있다. 나는 언제나 감정대로 움직였고 그때마다 실수를 계속 저질러 왔다. 속죄라고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속죄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오렌지 플레이어를 발호하게 한 책임이라든가, 공략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변명 같은 도리를 만들어내고 필사적으로 강하게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꾸며 왔다. 강자로서의 《검은 검사》를 계속 연기해 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놈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타이르면서.

그 결과, 나는 게임 클리어라는 대의를 내걸고 대의라는 이름의 표면으로 공략파의 힘을 빌리는 행위도 저질러버렸다.
나는 놈들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일 가능성을 거듭 감안하고 공략파 모두에게 협력을 간절히 부탁해 피투성이인 전쟁에 말려들게 했다. 솔로의 한계를 깨닫고 나 혼자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는 체념과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죽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바라는 이들까지 피비린내 나는 사투로 몰아냈다. ――그리고 함께 싸워준 동료들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게 하고 말았다.

그 남자――PoH는 괴물이다. PoH만이 아니라 놈들은 모두 살인을 꺼리지 않고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광인이었다. 나에게는 이미 놈들이 심상치 않은 광기를 품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의 형태를 한 괴물로 보이게 되어 있었다.

이야기에서 괴물을 퇴치하는 것은 언제나 용사의 역할이다. 그러나 나는 용사가 될 수 없다……그러니까 래핑 코핀과 싸우려면 나 자신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허용해버리는 외도, 놈들과 같은 부류, 타기해야 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자. 만약 래핑 코핀 멤버를 포박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때는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며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그 싸움에 임했다.

그런데 그때 PoH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공포를 느낀 나는 괴물조차 되지 못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용사가 되지 못하고, 깊은 어둠을 품은 괴물로 변하지 못하고, 허식의 가면을 벗기고 남은 것은 살인의 죄업을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뿐. ……무엇도 되지 못하는 꼴사나운 15살 짜리 녀석에 지나지 않았다.

플레이어끼리 죽고 죽이는 것은 어떤 주장을 내세워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래도 래핑 코핀을 막지 않는 이상 날이 지날 때마다 희생자가 늘어나 간다. 그 사망자의 열에 그놈들이 더해진다 해도 용납될 수 있을 리가 없어서――.
그래서 생각했다.
공략과 속죄. 의무와 인연. 범죄와 억제. 윤리와 살인. 동료, 약속, 그리고 나 자신의 미래.
생각하고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 끝에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선택하고 발을 들였다. 그것은 아마 발을 디디면 안 되는 경계선일 테고――.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리즈, 넌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줘. 결코 죽지 마.
너희들을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려보낼 거야. 지금 나는 그걸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글쓴이 후기>

《텔레포트 크리스탈》에 독자 설정을 추가. 강제 전이시키려면 파티를 짠 플레이어가 대상일 때만 가능한 한편 접촉할 필요도 있음.
《제복화》 커스터 마이즈는 독자 설정입니다.
또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무기가 대인 특화이고, 《암 블래스트》가 무제한이 아니라 소드 스킬 한정으로 변경하고 있는 것도 독자적인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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