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이제 와서 울면서 사과해도 이미 늦었어! 난 "진실한 사랑"을 깨달았어!! 앞으로는 그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 거야!!! 팬픽 번역

궁정의 댄스홀을 연상시키는 학교의 일실에 오우지의 단죄하는 듯한 대사가 울려 퍼진다.

「미코토, 너와의 약혼 관계는 파기한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여기는 딱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세계도 아니고, 물론 중세 유럽풍인 이세계도 아니다.
현대 일본의 한 사립 고교 교실에서 지금 문화제가 한창인 와중이다.

「……오우지 님, 진심이신지요?」

참고로 이것은 반에서 하는 공연이 아니다.
우리 반은 확실히 이세계를 컨셉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요점은 『이세계풍 찻집』이라는 코스프레 찻집이다.
즉, 이것은 연기도 여흥도 뭣도 아닌 예측하지 못한 사태라는 것.
연극이 아니다. 반복한다.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

「그래, 물론 진심이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한 네 횡포를 간과할 수 없어.」

우리 학교 최고 미남으로 유명하고, 그를 사모하는 팬인 여학생들에게는 『학교의 왕자님』이라 불리는 오우지 타쿠마가 그 단정한 얼굴을 불쾌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조금 전부터 그에게 안겨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는 소동물계 미소녀를 부드럽게 껴안으면서 눈앞에서 아연해하는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를 노려본다.

「……이 약혼은 우리만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약정으로 성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만의 생각으로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요?」

그렇다. 『약혼』이다.
현대 일본에서 사는 일반 서민인 내가 보기에 그것은 구름 위의 이야기를 넘어 공상으로서의 산물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보다 기묘하다는 얘기는 자주 나오는 법이고, 실제로 오우지와 그녀는 어릴 때로부터 약혼한 사이이며,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그대로 결혼한다는 것은 우리 학교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부모님은 내가 반드시 설득해 보이겠다. 뭐, 그것도 네 추악한 질투심이 일으킨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전하면 승낙해주시겠지.」

「도리에 어긋난 행위라……」

오우지 타쿠마는 그저 잘 생기기만 한 남자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대기업 『오우지 코퍼레이션』의 후계자이자 성적 우수, 문무양도, 거기다 페미니스트에 인격자라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 모습은 마치 여성향 게임 세계에서 튀어나온 "진짜 왕자"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약혼 상대가 지금 눈앞에서 단죄되고 있는 악역 영애 포지션인 소녀────사이온지 미코토였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내가 생각한 최강의 아가씨"를 연상시키는 그녀는, 요염한 짙은 어두운 색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고, 웬만한 그라비아 아이돌이 맨발로 달아날 것 같은 발군의 몸매를 자랑하며, 모두가 넋을 잃고 볼 것 같은 청초한 분위기가 아름다운 소녀다.
그 모습 때문에 그녀에게는 『참된 규중의 영애』, 『세계 유산 : 절벽 위의 꽃』, 『멸종 위기종 : 야마토 나데시코』, 『절대 가련 프린세스』라는 수많은 별명이 붙을 정도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사이온지 가문은 구 화족의 명가이자 자산가이기 때문에, 사이온지 미코토는 진짜 아가씨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양가집 규수다.

그렇게 모두가 인정하는 미남 미녀 둘이기 때문에 더욱 더 지금까지 아무도 질투하지 않았다.
마치 텔레비전 너머로 인기 아이돌을 바라보는 감각에 가까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우지 타쿠마 팬들은 멀리서 환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이온지 미코토에게 빠진 남자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황홀해한다. 
그 때문에 이 학교의 평온은 오늘까지 유지되어 왔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지금 진짜로 그 평화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

「제가 그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증거라도 있나요?」

「그건 히메카가 용기를 내서 증언해주었다. 내성적이고 연약하고 순수하고 더러움을 모르는 그녀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당연하지. 이 학교의 학생회장으로서 내가 그녀의 증언을 보증하마.」

「이몸도 보증하지. 불만 있는 놈은 내가 후려쳐주마!」

「저도 동감임다! 히메카가 우리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걸요!」

「그런 겁니다, 누님. 누님에게는 실망했습니다. 이건 가장인 아버지께 보고드릴 테니 각오하세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느새 스탠바이하고 있었는지 연달아 솟아나온 『G5』 멤버가 오우지 타쿠마와 여성향 게임 히로인 포지션 같은 소동물계 미소녀를 둘러싼다.
덧붙이자면 G5 멤버는 유명인인 오우지 타쿠마 외에 인텔리계 미남인 학생회장, 와일드계 불량 미남, 열혈 스포츠계 미남 후배, 쿨한 종자계 미남 남동생 다섯 명이다. 
미남이라고 바겐 세일을 하듯이 연속으로 부른 나머지 게슈타트 붕괴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들 폭발해버리면 좋을 텐데.

「……그렇군요. 오우지 님, 그리고 당신들도 모두 진심으로 그와 내 약혼 파기를 지지한다……라고 인식해도 되는 거겠죠?」

「당연하지!」

「흥, 경쟁자에게 소금을 보낸다는 것도 또한 일흥이라는 거다.」

「타쿠마에게 히메카를 넘겨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것과 이건 이야기가 달라. 정정당당이 이몸의 모토니까!」

「물론 진심입니다! 정의는 우리들에게 있슴다!!」

「누님, 남동생으로서 최소한의 정입니다. 여기서 모든 죄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죄한다면, 집안에서 의절하게 되는 정도로 용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저, 저를 위해서……고맙습니다.」

으, 으음…….
뭔가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는데?

처음은 즐거웠는데 말이지.
애초에 오우지와 사이온지 양이 반에서 기획한 이세계풍 찻집을 위해 귀족의 사교계를 의식한 의상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있었고.
그러니까 당초는 리얼 약혼 파기 이벤트라면서 텐션이 크게 올라갔었지만, 뭐랄까 이렇게……너무나 치졸한 모습에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고 할까.
왜 나는 탑 카스트 사람들의 치정극을 보게 되어 있냐는 허무감을 느끼고 텐션이 내려갈 따름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미묘한 느낌이 되어버렸으므로, 슬쩍 교실 안을 둘러보고 이 약혼 파기 이벤트를 지켜보고 있는 급우들이나 손님으로서 방문하고 있던 다른 반 학생들을 관찰해 보았다.

·여성향 게임의 약혼 파기 이벤트에 꿈을 꾸며 가슴이 뛰고 있는 여학생이 2할
·웹소설에서 인기인 착각 미남 전개를 기대하며 신나 있는 숨은 캐릭터 세력이 2할
·약혼이 파기되면 사이온지 양이 프리가 된다고 숨을 몰아쉬며 들떠 있는 남학생이 1할
·G5에게 보호받고 있는 히로인 소녀에게 질투해 이를 갈고 있는 여학생이 1할
·G5끼리 얽힌 모습에 콧김을 거칠게 하면서 망상에 빠져 있는 부녀자가 1할
·너희들의 치정극 따윈 알 바 아니고 문화제에 방해되니 다른 곳에서 하라는 이들이 3할

이상, 현장에서 시청자층의 분석이었습니다(교실 리서치 조사).

그렇잖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너희들만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믿어버린다는 이야기잖아.
보통 고등학교의 문화제에서 약혼 파기를 선언하던가? 원격으로 해. 텔레워크 몰라? 
웹상 회의에서 화면 너머로 친척 일동을 가지런히 한 상태로 원격으로 약혼 파기를 선언하면 되잖아. 일하는 방법을 개혁하라고!

그런 식으로 쓸데없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현실 도피를 하고 있자, 온갖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이온지 양이 조용히 입을 연다.

「……진짜로, 약혼을 파기할 생각인가요?」

「이제 와서 울면서 사과해도 이미 늦었어! 난 "진실한 사랑"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히메카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이다!!!」

어쩐지 오우지가 최근의 웹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장문 부제목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사이온지 양은 딱히 의식하는 태도도 아니고 그저 어깨를 작게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인 채로 말한다.

「지, 진짜로……?」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진심이신지요? 나중이 되고 나서 용서해 달라든가, 아까 한 말은 미혹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건데요.」

「끈덕지군.」

「지이~~~인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약혼을 파기하는 거죠?」

「아까부터 무슨 소리냐!? 너와의 약혼은 파기한다! 이 오우지 타쿠마에게 두 말은 없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콩트나 만담이라도 하고 있는 거냐고 말하고 싶어지는 말의 응수.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 이 교실에서 나가려고 발길을 돌리려고 한────그때였다.

「…………좋았어!」

갑자기 교실 안에 체육계 같은 대담한 승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어?」

「지금 누가 외쳤어?」

「혹시……」

「아니, 아니, 아니, 거짓말이겠지?」

「환청이야. 이건 분명 환청이 틀림없어.」

교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의 발생원인 소녀에게 시선을 향하면서도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해하고 있다.
실제로 나도 그 중 한 명이므로 무심코 「후에…?」라며 어린 소녀 같은 목소리가 새어버렸고. 
아, 싫다. 창피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흑역사가 늘어났어.

그 와중에도 사이온지 양은 외침 한 마디로 장소를 지배하고 있다.
모두가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망연해하는 가운데, 그녀는 용감한 승리 포즈를 푼 뒤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나 싶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버님? 지금 시간 괜찮으신지요? ……지금부터 중요한 회합이 있다고요? 그런 건 알 바 아니니 잠자코 제 이야기를 들으세요.」

아무래도 통화 상대는 사이온지 양의 아버지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품행 방정한 숙녀로서의 모습을 벗어 던지는 방약무인한 행동에 압도된 나머지, 교실 안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면서도 귀를 곤두세운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우지 타쿠마 님과의 약혼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파기되었습니다.」

『──!? ────!???』

……음.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분위기로 봐서 크게 패닉에 빠져 있을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그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니까.

「아버님. 제가 약속했었죠?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가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집안을 위해 뭐든지 따르겠다고.」

『──! ──!!』

아―……, 이건 역시 약혼을 파기한 상대에게 복수하는 전개인가.
어딘지 모르게 그런 낌새가 풀풀 풍기고 있군.

「그래서 저 자신을 숙였고, 오우지 님과의 약혼에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 후에는 약정대로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습니다.」

『──!?』

우와……. 사이온지 양이 한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우지와의 약혼은 본심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여성향 게임 히로인에 대한 질투심도 전혀 없다는 거잖아.
아, 오우지 타쿠마와 소동물계 미소녀가 딱 굳어져 있다. 서로 닮은 사람끼리 붙어 있는 격이잖아. 잘 어울리네~.

「하지만 상대방이 약혼을 파기했습니다. 비록 계약 불이행이라도 저한테 하자는 없잖아요?」

『──! ──! ───────!!』

「……증거요? 그거라면 나중에 4K 동영상으로 보내드릴게요. 그것보다────」

어, 이상한데…….
어쩐지 점점 교실 안 공기가 추워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누가 착각이라고 말해줘!

내가 맹렬한 오한에 등골을 떠는 것과 동시에,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이온지 양이 고개를 들었고, 그 표정을 똑바로 봐버린 오우지 타쿠마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거품을 물고 의식을 날린다.
여기서는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것은 분명 왜소한 인간이 엿봐서는 안 되는 것임이 확실하다.

「──이제 사이온지 가문에는 두 번 다시 속박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아가겠습니다.」

지독한 추위가 느껴지는 차가운 음성으로 그녀는 그렇게 힘차게 선언했다.

「그럼 회합에 힘써주십시오. ……평안하시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가차 없이 통화를 끊은 뒤, 주저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내던지고 단숨에 짓밟았다.
상당한 위력에 디스플레이가 갈라지기는 커녕 프레임에서 파손된 기반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완전히 죽었네요. 자원은 좀 더 소중히. 오빠와 한 약속이다.

「……」

아플 만큼의 침묵이 교실 안을 감싸고 있다.
만약 지금 소리 하나라도 내면 목숨은 없다. 그런 피해망상 비슷한 위기감을 교실 안의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분명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이온지 양을 제외한 사람들의 심정은 일치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즉 폭풍이여, 빨리 지나가다오……!

「……우훗.」

그러나 현실은 비정했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서 사이온지 양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친다.

「우후, 후후후후후. 우후후후.」

방울을 굴리는 듯한 음성으로 그녀는 계속 웃는다.
조용하게, 섬세하게, 단정하게, 그녀는 환희로 가득 찬 음성으로 광소한다.

「크훗, 후후후후.」

사이온지 미코토는 휙 하고 갑작스럽게, 아무 예고도 없이 돌아보았다.

「후후……」

지금 이 순간의 광경을 잘라내서 회화로서 액자에 장식하면 분명 미술관에 장식할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미소 지은 모습은 그만큼 신비스러우면서 아름답고, 기쁜 기색으로 가득한 미소는 너무나 매력적이면서 행복감으로 흘러넘치고 있고, 보는 사람 모두의 뇌를 매료하고 파괴할 것 같은 유열로 찬 미소는 오히려 폭력적이고 매우 모독적이면서 터무니없이 도착적이었다.

「우후후.」

「읏……!」

────모르겠어.

왜 사이온지 미코토는 이쪽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거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나는 왼쪽을 본다.

내 왼쪽에 서 있던 급우가 물속에서 달아나는 가재급 뒷걸음질로 휙 물러난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내뱉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향한다.

내 오른쪽 옆에 있었던 여학생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있다.

──나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내 뒤를 확인한다.

내 뒤에는 교실의 벽밖에 없었다.

「…………아하♡」

귀청을 빠져나가 고막에 얽혀붙는 교성에 내 의식은 강제적으로 정면으로 되돌려진다.
그녀와 교차하는 시선.
나는 본능으로 헤아렸다.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다정한 시선에 녹아들어간 광희.
──여신처럼 이지적인 시선에 숨어 있는 광애.
──어린애처럼 순수한 시선에 배어 나오는 광념.

사이온지 미코토가 나한테 향하는 시선은 완전히 포식 대상을 노리는 육식동물의 그것이었다.



*  *  *

 

나────사이온지 미코토라는 인간은 인형이었습니다.

『너는 사이온지 가문의 딸이다.』

철이 들기 전부터 저주처럼 반복하면서 계속 들은 말.
내 바닥에 깊고 깊고 깊이 뿌리내려 존재 이유라고조차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착해버린 저주.

나는 사이온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살고 있다.
나는 사이온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거기에 의문을 품을 여지 같은 건 없었다.
그것이 사이온지 미코토의 일상이자 상식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전부였으니까.

나에게 자아라는 것은 없었다.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사이온지 가문의 명령에 따르는 자동 인형으로 계속 존재하면 될 뿐.
그래서 공부도, 배우는 것도, 인간 관계조차도, 나는 오로지 집안의 지시에 따르면서 살아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우지 타쿠마입니다.』

『어떠니, 미코토. 영리하고 착한 아이 같지 않니?』

어느 날, 나를 매우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한 사내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할아버지와 절친한 사이인 오우지 가문의 적자이자 나와 동갑이라는 소년.

『이 아이라면 장래에 네 반려로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게다. 어떠니, 미코토. 기쁘지 않느냐?』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기쁘다는 듯이 가늘게 뜬 부드러운 두 눈동자────그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명령"을 읽어낸 나는 생긋 미소 지었다.

『네, 매우 기쁩니다.』

할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가 웃는다. 어머니가 웃는다.
사내 아이가 얼굴을 새빨갛게 하면서 쑥스러워하길래, 나도 똑같이 웃어서 답했다.
할아버지가 웃었다. 아버지가 웃었다. 어머니가 웃었다.

────나는 능숙하게 웃고 있었을까.


 
 *  *  *

 

내가 다니는 학교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일관되는 학교이고, 좋은 집안의 자녀들이 모이는 배움터로서 유명합니다.
그런 학교의 고등부에 진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봄.

나는 여전히 『사이온지 가문의 딸』인 채였습니다.

거기에 불만같은 건 없습니다.
애초에 불만스럽게 생각할 사고 회로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오로지 사이온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뿐.

『……히메카, 내 사랑스러운 사람.』

그래서 고등부로 진학한 순간, 그가 외부 입학조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우지 님과 문제의 여학생이 사이좋게 둘이서 만남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봐도 질투심을 품을 일도 없고, 분노를 느낄 일도 없습니다.

내 가슴 속에 있는 것은────『무』.

『「좋아한다」의 반대는 「싫어」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고등부를 졸업하면 결혼하게 되니까, 오우지 님이 고등부의 3년간을 누구와 보내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뭐하면 나와 결혼한 뒤에도 애첩으로서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역할은 오우지 타쿠마와 결혼해 오우지 가문의 상속인을 낳는 것.
그 다음은 오우지 가문을 사이온지 가문의 괴뢰가 되도록 관리하는 것.

거기에는 연모의 정도, 친애의 증거도 필요 없다.
그는 오우지 타쿠마로서의 역할을 완수하고, 나는 사이온지 미코토로서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으면 다른 거에 얽매일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나는 쭉 그렇게 살아 왔다.
그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는 평생을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 계속 바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  *  *

 

그날은 위원회 활동 때문에 평상시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라면 등교해 온 학생으로 활기차 있는 승강구도 인적이 없어서, 나 이외에는 낯선 남학생이 한 명 있을 뿐.
급우는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니고, 사이온지 가문으로서 친교를 깊게 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즉 내가 얽힐 필요성이 없는 상대라는 것.
나는 말을 주고 받지도 않고, 시선을 보내지도 않고, 인사를 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뒤로 했습니다.

내 반이 있는 3층으로 향하기 위해 나는 계단을 오릅니다.
층계참을 지나가고 또 계단을 오릅니다.
한 계단 한 계단, 한 걸음 한 걸음, 아무 감개도 없이 걸어갑니다.

금방 3층에 도달하는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려고 오른쪽 다리를 가볍게 들어올렸을 때.

한순간만 갑자기 의식이 멀어졌습니다.

「──!」

아마 빈혈이라든가 일어섰을 때 느끼는 현기증이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몸이 균형을 잃고 등부터 쓰러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 죽는구나.

근거는 전혀 없지만,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계단의 정상 부근에서 낙하하고, 계단의 층계참까지 굴러 떨어지고, 무방비하게 뒤통수를 부딪힌 나는 죽는다.

그렇게 깨달았을 때, 문득 주마등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지금까지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 살아온 자신.
지금까지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 걸어온 인생.

거기에 색은 없었다.
거기에 소리는 없었다.
거기에 향기는 없었다.

그저 무색 투명하고, 그저 무미건조한 허구 같은 나날의 기억.

「────싫어.」

눈초리에 눈물이 어리면서 시야가 희미해진다.

……죽고 싶지 않아.

난 이런 인생은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이렇게 인형처럼 살아가는 건 싫어.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듯이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려고 하지만, 내가 그것을 자각한 바로 그때, 주위의 경치는 또 원래대로의 시간의 흐름을 되찾는다.
찰나에 느낀 부유감.
그 다음에 닥쳐오는 중력이라는 이름의 현실.

「────!」

뭔가 붙잡으려듯이 작게 내민 손가락은 허공을 잡을 뿐, 거기에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약혼자도, 아무도 없다.

『너는 사이온지 가문의 딸이다.』

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내 머릿속에 울린 것은 그런 저주의 말이었다.

…………싫어.

싫어……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분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안아줘 죽고 싶지 않아 인형인 채로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슬퍼 죽고 싶지 않아 머리를 쓰다듬어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장기말처럼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손을 잡아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허무해 죽고 싶지 않아 도구 취급받으면서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나를 봐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외로워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따스함을 원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사이온지 가문을 위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미코토잖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버리지 말아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누가 좀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나를────────도와줘.



「으엣!? 위, 위험해!!!」


 
등부터 계단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누군가가 나를 억지로 껴안았다.
나를 지키려듯이 다정하게 뻗은 두 팔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꽉 끌어안는다.
상하좌우가 애매모호해질 정도로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떨어졌고, 내 의식도 빙글빙글 흔들리면서 마음도 흔들린다.
애매한 사고의 한쪽 구석에서, 몽롱해지는 이성의 틈에서 단 하나만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

나는 지금 외톨이가 아니다.

그런 사소한 것이, 단지 그것만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이 기뻐서 가슴이 크게 울렸다.

 

 *  *  *

 

층계참까지 굴러떨어진 우리는 겨우 그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나 나는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생각하고 있었던 충격도, 몸의 아픔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과 가슴의 아픔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대…우……」

「읏……」

바로 옆에서 아픔으로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에는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그가 있었다.

나는 그의 팔 안에서 푹 감싸이고 있었고, 나를 구해준 그에게 덮이듯이 가로놓여 있었으며, 나를 구해준 그에게 딱 달라붙어 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해──.
빨리 물러나줘야 해──.
그는 다치지 않았을까──.

그런 당연한 것이 차례차례로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내 몸은 조금도 말을 듣지 않는다.

교복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따스함이 편안해서──.
힘껏 껴안아주는 느낌이 그리워서──.
온 몸으로 느끼는 그의 감촉을,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잃어버리는 것이 불안해서──.

「아―……, 그게 저기, 그…괜찮, 으세…요?」

그가 걱정스러운 듯이 흠칫거리면서 묻는다.
그것과 동시에 미안하다는 얼굴을 한 그는 두 손을 확 벌려버린다.

「────아」

채워지고 있던 무언가가 급속히 없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읏……!?」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따스함이 멀어진다는 공포로 목이 떨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

「어……?」

심장이 꽉 쥐어진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가슴 안쪽이 조여지면서 아프다.
고독과 절망으로 온 몸이 찢어질 것 같고, 너무나 안타까워서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는 상실감으로 미쳐버릴 것처럼 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음대로 뚝뚝 흘러 떨어져 그의 가슴팍을 적시고 있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솟구치는 충동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매달린다.

「히욧!? 어, 어어……?」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처음으로 느낀 이 따스함을, 이 감정을 놓고 싶지 않아서, 응석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작게 싫다고 고개를 저어 보인다.

「읏……. 아니, 하지만…아―…………젠장.」

그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사실에 죄책감으로 짓눌려서 죽고 싶어졌다.

「저기, 잘 모르겠지만……. 싫으면 말해줘. 금방 놓을 테니까.」

「아……」

등에 따스한 감촉이 돌아왔고, 그의 팔이 나를 꼭 껴안는다.
그뿐만 아니라 어색한 손놀림으로, 익숙하지 못한 움직임으로 서투르면서 천천히, 그가 다정하게 내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그의 팔에 안기고────.
그의 따스함을 피부로 느끼고────.
그의 냄새에 감싸이고────.

그것이 너무 행복하고 너무나 편안해서 어느새 꾸벅꾸벅 하고 있던 나는 마치 엄마가 달래주는 갓난아기처럼 금방 잠들어버렸다.

 

 *  *  *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광경은 낯선 천정이었습니다.

「여기는……?」

아무래도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는 걸 알고 신중하게 윗몸을 일으킨 뒤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둘러본다.

「……」

옆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커튼으로 닫힌 침대 위에서 혼자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꿈이었던 걸까요?

새삼스럽지만 현실감이 없는 전개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해버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이 울고 싶어졌다.
……싫어.
그때 느낀 그의 따스함이, 행복으로 가득한 기억이 모두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한 번 더 그를 만나고 싶어.

만나서 이름을 알고 싶어.
만나서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
만나서 또 껴안아줬으면 좋겠어.

굶주린 것처럼 강렬한 기아감으로, 몸을 태울 것 같은 초조함으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질 정도인 상실감으로 내 의식은 완전히 깨어난다.

「어머, 일어났니?」

조심스럽게 열린 커튼 틈새에서 양호 선생님이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에 여기가 양호실이라는 것을 헤아렸다.

「저기……」

「상태는 어때? 몸이 나른하다든가, 기분이 좋지 않다든가?」

「그게……. 아니요. 괜찮은 것 같아요. 그것보다────」



「저를 옮겨준 분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만……」

 

 *  *  *

 

나를 구해준 남학생은 나를 양호실에 옮겨둔 뒤 만류하는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당황한 것처럼 멀리 도망쳐버렸다고 한다.
이름도, 반도, 학년도 불명.
얼굴도 어슴푸레한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의 냄새와 그 따스함뿐…….

「──반드시 찾아내겠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그의 냄새를, 따스함을, 그라는 존재를────.

이날, 일그러져 있던 나라는 존재가, 갈라져 있던 내 마음이 한 번 산산이 부서지고 다시 구축되었다.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의 나는 죽고, 그저 사이온지 미코토로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기다려주세요. 사랑스러운 사람.」

나는 흥분을 억누르듯이 둔 손으로 자신을 세게 안고 몸을 떤다.

「…………우후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  *  *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단서는 있다.
그날, 나는 평상시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등교하고 있었다.
그런 나와 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는 나와 같은 위원회이거나, 혹은 평상시에 그 시간에 등교하고 있는 인물.
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같은 학년 남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으로 전 남학생 중 3분의 1에까지 좁힐 수 있었다.
다음은 각 반을 돌고 샅샅이 뒤지며 냄새를 맡아 가면……, 냄새…로…………?

「그건 그저 변태일 뿐이잖아요.」

확실히 그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릴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일단 이런 나라도 숙녀의 축에 끼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수치심은 있습니다. 거기다 그 이외의 냄새를 맡는다고 상상한 것만으로 토할 것 같아서 최악의 기분이 되어버리는군요.
그러니 뭔가 이렇게…합법적으로 핀 포인트로 그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결국 그럴싸한 명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우연을 가장해 교사 안을 돌아다니며 걷는다는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복도에서 남학생과 엇갈릴 때마다 두근두근하고 가슴을 크게 울리면서 냄새를 맡을지 갈등했지만, 역시 결단이 서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움으로 괴로워할 뿐인 나날이 사흘이나 계속되었을 때였습니다.

내가 이제 일과가 되어 있는 교내 탐색에 힘쓰고 있자, 복도 전방으로부터 남학생 두 명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얼굴이니 아마 다른 반 사람이겠죠.

오른쪽 남학생은 약간 뚱뚱한 체형이므로 아니다. 그는 중키에 살도 적당한 체격이었으니 논외.
다음에 반대쪽을 걷는 남학생을 주목한다.

체형은 중키에 살도 적당한 체격. 일치한다.
머리색은 검고, 머리를 염색하고 있지 않다. 일치한다.
특히 머리 모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잠버릇으로 흐트러진 부분만 고친 듯한 무난한 머리 모양. 일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은 평범한 편. 빈말로도 잘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못생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검증.
몸에 지니고 있는 분위기는……내성적이고 시원찮기는 하지만 그 근간에 숨어 있는 다정한 기색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온다. 고평가.

그와 내 거리가 앞으로 몇 미터인 곳까지 좁혀진다.
갑자기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 심장이 두근 하고 크게 동요한다.
그와 나의 거리가 줄어든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두 명분의 속도로 거리가 줄어들어 간다.
그와 엇갈리는 그 순간────,

「읏……!」

무의식적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가 지나간 뒤에 감도는 희미한 잔향.
모든 신경을 총동원해 기억 안에 잠든 그때의 냄새와 조합한다.

「…………아핫♡」

당장 그를 쫓아가 껴안고 싶은 충동을 어떻게든 견딘다.
사실은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 도중에 주저앉을 것 같아서 실제로는 서 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건 뭘까요. 그건가요? 금단증상인가요? 동계가 부정맥으로 하복부가 쑤시면서 뇌가 녹아 당장 화장실로 뛰어들지 않으면 이후의 학교 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죽어버릴 것 같으니 지금은 전략적 후퇴입니다. 이것으로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결코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얼굴은 기억했습니다.



「지금 엇갈린 사람은 1반의 사이온지 미코토지? 멀리서 봐도 미인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장난 아니네.」

「그래―……. 그 여자애는 사이온지 양이었구나.」

「뭐야, 몰랐어?」

「응. 아직 우리 반 여자도 전원을 다 기억하지 못했는데, 다른 반 여자라면 더욱 그렇지.」

「넌 이성 관계는 진전이 늦을 것 같아. 뭐랄까, 무뚝뚝하다는 느낌이랄까.」

「시, 시끄러! 내버려 둬……」

「하지만 만약 사이온지 양한테 한눈에 반했다면 포기해. 사이온지 양은 약혼자가 있다고 하니까.」

「어, 그래……?」

「그래. 게다가 상대가 학년 최고 미남으로 유명한 그 오우지 타쿠마라더라. 반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 있어.」

「…………그렇구나.」

 

「그렇구나……」

  

 *  *  *

 

운명의 만남을 이루고 나서 일주일.
나는 지금까지 평상시대로인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심을 말하자면 당장이라도 그를 확보하고 안은 채로 온 몸을 쇠사슬로 빙빙 감아놓아서 평생 떨어질 수 없도록 하고 싶습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학교에서 유명합니다.
용모로서도, 집안으로서도, 그 약혼자에 대해서도…….

그런 내가 갑자기 그에게 호감을 보여도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선은 어떻게 하면 그와 내가 행복을 향수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하겠죠.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바보같이 솔직하게 고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세계뿐이니까요.

다행이라고 할까, 그의 주위에 여자의 기색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사전 준비를 해두는 게 우선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정신으로 확실하게 갑시다. 
설령 지금 그에게 연인이 생겨도 문제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내가 빼앗으면 해결되니까요. 
……과정? 목적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결과가 좋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니까요.

우선 착수한 것은 사이온지 가문의 영향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것.
미성년이라는 족쇄가 문제입니다만 그걸 타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지금까지 사용할 데가 없어서 모으기만 할 뿐이었던 저금을 기반으로 삼아 미성년이라도 거래할 수 있는 자산운용에 닥치는 대로 손을 대었습니다.
주식, 채권, 투자신탁, FX, 가상 통화 등등…….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만 있으면 자택에 있으면서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으므로 웃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덧붙여서 계좌 개설 등의 수속에는 친권자의 승낙이 필요했기 때문에, 장래를 위한 사회 공부의 일환이라든가, 손실을 내면 바로 물리겠다고 말해서 완강하게 설득해냈습니다.

그리고 반 년 후, 나는 제로 자리수가 줄을 선 압도적인 계좌 잔고를 배경으로 변호사와 세무사를 고용해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흥신소에 의뢰해 사이온지 가문과 오우지 가문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모았습니다. 물론 장래의 포석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알아듣지 않는다면 이것을 사용해서 두 집안을…………우후후후.

그렇게 해서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내가 2학년으로 진급한 시기에 증거도 적당히 모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위협……흠흠, 아버지를 설득해봤습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나도 사람의 아이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귀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 일반이 보기에 풍족한 것이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짜 의도가 어쨌든간에 사이온지 가문은 지금까지 키워준 은혜가 있습니다. 
자각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관계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복수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사이온지 가문에서는 그것이 당연했다고 말할 뿐. 이단인 것은 나입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창백하게 하면서 나를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나는 만면의 미소로 고한다.

──지금까지의 보은도 담아서 앞으로 한 가지만 당신 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다만 그 대신 이후는 자유롭게 살겠습니다. 제가 누구와 살든, 어떤 인생을 걷든 불평은 듣지 않을 테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길. 

그 결과, 아버지 입에서 나온 "부탁"은 고교 졸업 후와 동시에 내가 오우지 타쿠마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좋아요. 그것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남자와 결혼하겠습니다.
퍼스트 키스든 처녀든 뭐든지 바쳐드리겠습니다. 아이도 몇 명이든 낳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뿐. 거기에 가치는 없다.

마침 그는 그 외부 입학조 여학생에게 반해 있다.
그렇다면 서로 가면 부부를 연기하면서 표면상으로만 부부로 지내고, 나머지는 간섭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이상하다.

내 이런 생각은 단순한 자기만족이고, 모두 제멋대로인 욕망의 강요이고, 그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날 경멸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그가 날 혐오한다면 분명 나는 울어버리겠죠.
그가 날 거절한다면 분명 나는 죽어버리겠죠.

그래도 누구에게도 그와의 행복을 방해받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면 이런 어리석은 방법밖에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역시 나는 이상하다.

그를 위해서라면 괴롭지 않을 텐데, 왜 나는……눈물이 멈추지 않는 걸까.

 

 *  *  *

 

2학년이 되고 나서의 학교 생활은 마치 천국 같았습니다.
그 최대 요인은 물론 약혼자인 오우지 타쿠마와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멀리서 엿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작년에 비해, 교실에서의 그와 나의 거리는 항상 10미터를 유지하고 있습다. 
……이것은 이미 동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들뜬 나머지 그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그의 입장을 위태롭게 해서 폐를 끼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나로서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나는 어디까지나 사이온지 가문의 영애이자 오우지 타쿠마의 약혼자이고, 이 학교의 마스코트.

그러니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도록 합시다.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걸 항상 염두해둬야 합니다.

매일 교실 구석 뒷자리에서 그의 옆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
드물게 우연히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행복.
교실 안에서 엇갈릴 때, 그의 냄새를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

행복 지수의 탁류에 빠진 나머지 도중에 승천해버릴 것 같습니다.
과연, 이것이 해피 엔드라는 걸까요……. 실로 흥미롭습니다.

「……하아.」

인적이 없는 방과 후 교실. 나는 지금 그의 책상에 얼굴을 묻고 심호흡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가의 SHR 때, 오후 수업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가 책상에 푹 엎드려 자고 있었으니까요.
이건 기회라면서 나는 교실에서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을 기다리고 그의 책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실질적인 동침인 게 아닐까요?

「……아후.」

아무래도 나 같은 여자를 세상에서는 「얀데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가 교실에서 친구분과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던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그의 성벽과 잘 들어맞고 있었다는 것이죠. 역시 이건 운명인 게 아닐까요……?

하지만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창작상의 얀데레라는 존재입니다만, 이야기의 묘사로 마음을 품은 상대의 사유물을 훔치고 미리 준비해 둔 신품과 살짝 바꾸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건 좋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비록 신품과 바꾼다고 해도 절도는 절도.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런 건 자신이 자제심이 없다는 것을 애정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둑질을 반복하는 병을 지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나를 저런 저속한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나는 제대로 그가 소유권을 방폐한 것에 한해서 회수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요. 이것은 소위 리유스입니다. 리사이클이라고 말해도 되겠죠.
덧붙이자면 내가 추천하는 건 사용이 끝난 땀 닦는 용도로 쓰는 물티슈. 
그는 향료가 없는 타입을 애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름철은 그의 땀과 냄새를 대량으로 들이마신 땀 닦는 용도인 물티슈를 즐길 수 있습니다.

네? 어떻게 회수하고 있냐고요?
…………기업 비밀입니다.

곤란하군요.
최근 그의 취향이라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에 사고가 범해지고──침범되고──오염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숙녀니까 좀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죠…….

「……책상은 핥으면 안 될까요.」

나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군요.

 

 *  *  *


 
2학기 최대 이벤트라면 문화제입니다.
내가 소속한 반 기획은 어떤 경위를 거쳤는지 어느새 『이세계풍 찻집』이라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내장을 댄스홀처럼 장식하고, 교실 구석에는 뷔페 형식을 흉내내서 시장에서 파는 과자와 홍차가 줄을 서고, BGM으로서 왈츠를 흘립니다.
아마 진정한 상류 계급 분들이 보기에는 실소가 나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의 리얼함이 아니라 『이세계풍』이라는 컨셉에 근거한 중세 유럽풍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모양입니다. 자세히는 모릅니다.

손님은 좋아하는 의상으로 코스프레하고 과자나 홍차를 가볍게 즐긴 뒤 교실 중앙에서 춤을 춥니다.
당연히 분위기를 내기 위해 우리 스태프 역인 학생들도 모두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어디서 조달해 왔는지 쓸데없이 질이 좋은 본격적인 파티 드레스나 의상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나나 오우지 타쿠마라는 외모가 빼어난 학생은 귀족 의상을 입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댄스 요원. 
그 이외의 반 학생들은 종자 차림으로 접수나 유도, 과자 보충 등의 잡무에 종사하는 역할을 분담합니다. 
할 수 있다면 그가 내 종자가 되어주었으면 한다고 할까요.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내가 그의 종자가 되고 싶다고 할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메이드든 노예든 뭐든지 할 생각입니다만 자중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이벤트 준비를 구실로 그 옆에 있고 싶었습니다만, 댄스 요원은 모두 별실에서 댄스 연습에 전념해야 하고, 이벤트 준비는 그 이외의 멤버가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단념했습니다.
거기다 연기의 일환으로서 어미나 어조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귀족풍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어쩐지 자포자기가 된 나는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면서 수긍했습니다. 오호호호호. ……하아.

그렇게 해서 맞이한 문화제 첫날.
결국 준비 기간 중에는 한 번도 그와 접촉하기는 커녕 옆에 다가갈 수도 없었던 나는 자포자기가 되어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 ……!? 으으읏!!!?」

댄스 의상으로 갈아입고 교실에서 대기하고 있자, 스태프 담당인 학생들이 종자 차림을 하고 교실에 우르르 들어왔습니다.
그 자체는 문제 없습니다. 메이드복이나 집사복만이 아니라 왜인지 교회 성직자나 모험가 같은 의상을 한 분들까지 있었습니다만, 거기는 이세계풍이라는 컨셉을 생각하면 당연하겠죠. 
학생 몇 명은 수인 캐릭터를 의식했는지 개나 고양이의 귀나 꼬리도 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입니다.

귀족 가문을 시중드는 견습 정원사를 떠올리게 하는 간소한 작업복은 실제 연령 이상으로 그를 어리게 보이게 하고 있어서 뭐랄까, 이렇게……어린 소년 같은 느낌이 늘어났습니다.
그것만으로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의 머리에는 늘어뜨려진 개귀가 복슬복슬한 풍으로 달려 있습니다. 
그에게 개귀를 붙이도록 한 의상 담당인 학생에게는 최대급 찬사를 증정하고 싶군요. 다음에 익명으로 금일봉을 선물하도록 합시다.

그래요. 뭘 숨기겠습니까.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파입니다.
강아지나 소형견의 귀여움에는 특히 약합니다.

그런데 그라고 한다면────

원래 남자 치고는 몸집이 작은 그가 의상 때문에 평상시보다 한층 더 어린 인상이 되었지만,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긴장 때문인지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품이 전면에 나와버려서 아까부터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겁이 많은 강아지를 연상시키고, 거기에 더해 평소 멍해 있는 그의 졸린 듯한 눈과 좋아하는 라이트 노벨의 영향으로 시작한 것 같은 비뚤어진 캐릭터로는 숨기지 못하는 다정한 시선이 합쳐지면서 그것은 이미 마치 빛과 어둠이 모두 갖추어져 최강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한순간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백일몽이라도 꾸고 있었나 걱정되어서 무심코 세 번 봐버렸습니다만, 거기에 그가 있다는 것은 현실이란 거겠죠. 드디어 내 시대가 왔어요. 해냈어요, 미코토 대승리. 이것은 이미 중대 발표라는 것으로, 즉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한다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것다 갈색의 늘어뜨린 귀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비글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이건 이미 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겠죠. 그런 거겠죠. 비글 강아지는 개인적으로 이미 크리티컬 히트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혹이란 게 있는 건가요? 역시 유혹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귀여워! 만세!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다음에 새전에 돈뭉치를 넣어두겠습니다. 이야아아앗호오오오오오오우!

……실례. 조금 흥분해버렸군요.

하지만 잠시 기다려주실 수 없을까요.
변명하자면 이것은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럽게 그가 개귀 룩을 쓴 것을 보고 말았다고요.
넋을 잃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사이온지 가문의 엄격한 교육으로 길러진 강철의 정신력이 없었다면 바로 동요하고 폭주한 나머지 즉사였습니다.
처음으로 사이온지 가문의 교육에 고마워했을지도 모릅니다.

포커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코피도 내지 않고 계속 참은 나를 누군가 진심으로 칭찬해주세요.
……아, 역시 사양할게요. 본 적도 없고 모르는 상대가 칭찬해줘도 조금도 기쁘지 않으니까요.

모처럼 칭찬해주는 거라면 그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지명료를 지불하면 가능할까요?
옵션 요금도 지불할 테니 머리라도 쓰다듬어주세요. 쓰담쓰담해주세요(뇌사).

「……헉!?」

너무 들떠버린 나머지 그만 깨달음을 열어버렸습니다.
아마 부처로서의 깨달음까지 도달하고 있던 게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번뇌로 인한 업이라는 것이군요.

그런 것보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그가 반의 일부 여학생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만.
이것은 무슨 일일까요? 어쩔 생각일까요? 당신들 평상시에는 오우지 타쿠마와 유쾌한 동료들을 대상으로 열광하고 있었잖아요. 
「의외로 잘 어울리네」,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엽다」, 「……애완동물로 삼고 싶어」가 아니잖아요.

이제 와서 그와 개귀의 조합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달은 건가요? 
늦었군요. 거기는 이미 내가 지나간 길입니다.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조금 전에 깨달았지만요…….

후후……. 당신들, 꽤 좋은 취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맞네요.
우린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친구가 될 수 없을까요? 안 되나요? 그렇습니까? 상관없어요. 
어느 쪽이든 최종적으로는 배제할 거니까요. ……배제해야만 해(사명감).

「얘얘! 손 줘봐, 손!」

「올치 올치, 착한 아이네.」

「……꼬리 만지게 해줘.」

…………뭐?

아, 잠깐, 잠깐 기다려주세요.
만질 수 있는 시스템인가요? 여긴 그런 가게였나요!?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해줬다면 큰 돈을 지불해서라도 대절했을 텐데…….

「어, 저기…잠깐!? 그, 그러지 마……」

「괜찮잖아. 딱히 닳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게, 내 정신이 닳고 있는데.」

「그럼 딱히 닳아도 문제 없잖니.」

아, 아아……읏!? 지금 개귀를 어루만지는 흐름을 타면서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어요!
치사해요. 난 그가 머리를 어루만져준 적이 있지만, 그의 머리를 어루만진 적이 없는데……!

「우왓!? 어……? 미안, 그……아, 닿았」

「닿게 하고 있는 거야.」

「왜 거기서 뽐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그쪽은 꼬리가 달려 있는 부분을 만지는 건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거부.」

이보세요…….
당신들, 조금 보디 터치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숙녀로서의 자각은 없는 건가요? 같은 여자로서 경망스럽지 않나요?
꼬리를 만지고 있는 틈을 타서 엉덩이를 건드리다니, 명백한 성희롱이잖아요. 부러우니까 잠시 그 자리를 바꿔주세요.

게다가 그도 그렇습니다.
좀 여자한테 무른데다 싫지만은 않은 듯한 건 뭘까요? 여자라면 누구라도 좋은 걸까요? 그렇다면 나라도 좋잖아요? 가슴은 그 아이보다 내가 크다고요. 거기다 용모에서도 질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봐도 나는 다소 성격이나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런 건 사소한 겁니다. 거기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니, 뭐하면 뼈의 골수까지 빨아낼 기세로 최선을 다할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나는 안 되나요……?

「있잖아, 모처럼이니까 기념으로 사진 찍어도 돼? 아니, 찍을게!」

뭐라…고요……?
설마 촬영 NG가 아니라 OK였다니……. 나, 나도 갖고 싶어요! 그의 강아지 폼이 찍힌 사진을 갖고 싶어요!!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최신형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상비해 뒀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요즘 스마트폰은 카메라 기능도 우수하다고 하니, 이것으로 나도…나, ……나…도…………어떻게 끼어들면 될까요?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이야기에 끼어든다?

「모처럼이니까 나도 기념으로 100장 정도 찍어도 될까요?」

안 되겠네요. 애초에 표면상으로는 나와 그에게는 같은 반 학생 이상의 접점은 없고, 저 여자들과도 친하지는 않습니다.
이 타이밍에 말을 건넨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부자연스럽겠죠.

……어라?

그럼 나만 그의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없잖아요……?
저런 갑자기 튀어나온 닳고 닳은 것들이 그의 사랑스러운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나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나는 뇌 안의 메모리에만 보존할 수 있다는 건가요? 이 얼마나 잔혹한 처사인가요. 머릿속의 영상은 현상할 수 없잖아요. 알고 있었나요? 나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렇게 되면 이제 운을 하늘에 맡기고 몰래 멀리서 촬영해 볼까요? 아니, 하지만 그러면 도촬이 되어버리고, 아무래도 도촬은……도, …찰……?

…….
………….
……………….

그렇군요. 그 방법이 있었군요.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거나 누군가에게 팔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게 되잖아요. 애초에 들키지 않으면 폐라고 생각할 여지조차 없으니까요. 그리고 말이죠, 차도 블랙박스로 허가 없이 통행인이나 맞은편 차를 촬영하고 있잖아요. 가게의 방범 카메라도 마찬가지고요. 일일이 촬영 대상에게 허가를 요구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몰래 카메라를 장치하는 것도 문제 없어요. 그거예요. 방범 목적이예요. 생각해보세요. 이 학교는 양가의 자녀가 다수 재학하고 있으니, 나쁜 짓을 꾸미는 자가 섞여 들어와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니 방범 카메라 한두 대가 아니라 교실 안을 전방위로 커버할 수 있는 수가 필요한 것은 필연적이지 않겠어요? 후후……내가 생각한 거지만 완벽한 이론입니다. 다행히 이전에 친가의 약점을 잡기 위해 준비한 몰래 카메라가 있으니 그것을 유용하기로 합시다. ……네? 도촬도 명백한 범죄라고요? ……모르는 개념이군요.

하아……. 예쁘게 360도 촬영할 수 있다면 VR용 아바타라도 작성할 수 없으려나요.

 

 *  *  *

 

문화제 이틀째.
첫날과는 달리 오늘은 학교 밖으로부터 손님이 오는 날입니다.

어제의 반성을 살려서 아침 일찍부터 준비에 분주했으므로 이미 방범 대책도 만전.
오늘이야말로 그의 개귀 룩을 1초라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것으로 나도 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언제든지 언제까지나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어요. 이얏호오오오우! 문화제 최고-!

라고 그렇게 신이 나 있었습니다만…….

「미코토, 너와의 약혼 관계는 파기한다!!!」

놀랍게도 오우지 타쿠마로 인해 약혼 파기 이벤트가 벌어졌습니다.
저질렀군요. 이 사람, 저질러주셨군요……!
뭐랄까, 내 머리 위에서 축복의 종 모양을 한 것이 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우지 님, 진심이신지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설마 했던 전개에 무심코 롤플레이 하고 있던 귀족 영애 어조로 질문해버렸습니다.
사실 그런 사소한 것에 얽매여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이것은 기회. 천재일우의 큰 기회입니다. 반드시 잡아 보이겠어요!

「그래, 물론 진심이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한 네 횡포를 간과할 수 없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설프게 부정해서 착각했다며 약혼 파기를 취소하셔도 곤란합니다.
여기서는 그야말로 악행이 들켜서 쓸데없는 발악을 하고 있는 비참한 영애풍으로 집안 사정을 방패로 내세워 반론하도록 하죠.

「……이 약혼은 우리만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약정으로 성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만의 생각으로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요?」

「부모님은 내가 반드시 설득해 보이겠다. 뭐, 그것도 네 추악한 질투심이 일으킨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전하면 승낙해주시겠지.」

정말로 설득해주시는 거죠? 꼭 하시는 거죠?
하지만 이 정도로는 조금 약하겠죠. 아직 방심은 금물.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결정적인 다짐을 받기 위해서라도, 잘못은 완전히 상대방에게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상대의 실언을 끌어내도록 합시다.

「도리에 어긋난 행위라……」

정말로 난 도대체 뭘 했다는 걸까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만…….

「제가 그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증거라도 있나요?」

오히려 나는 그녀와 오우지 타쿠마 사이를 응원하기 위해, 질투심을 품고 그녀를 괴롭히려고 하는 오우지 타쿠마 팬들을 견제하면서 지켜주기까지 하고 있었는데요.
이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건가요? 하지만 약혼 파기 자체는 나로서도 바라 마지않던 거니까, 그녀와 오우지 타쿠마로부터의 은혜 갚기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요……?

「그건 히메카가 용기를 내서 증언해주었다. 내성적이고 연약하고 순수하고 더러움을 모르는 그녀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어라……. 설마 그녀의 말만 믿고 약혼 파기를 선언해버린 건가요?
좀 더 이렇게 반석으로 발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라도 준비해주세요. 
필사적으로 결정적인 언질을 꺼내려고 기를 쓰고 있는 내가 바보 같잖아요.

분명 뭔가 있겠죠?
증거 사진이라든가, 현장에 떨어져 있던 내 사유물이라든가, 그러한 물적 증거를 내주세요. 날조라도 좋으니까요!

「당연하지. 이 학교의 학생회장으로서 내가 그녀의 증언을 보증하마.」

「이몸도 보증하지. 불만 있는 놈은 내가 후려쳐주마!」

「저도 동감임다! 히메카가 우리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걸요!」

「그런 겁니다, 누님. 누님에게는 실망했습니다. 이건 가장인 아버지께 보고드릴 테니 각오하세요.」

아, 네.
이제 됐습니다. 당신들에게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남동생은 어느새 이런 유쾌한 동료들에 들어간 걸까요.
이렇게 그릇이 작은 남동생으로 사이온지 가문은 괜찮은 걸까요?
이 아이가 사이온지 가문을 계승한 장래가 조금 불안합니다만, 나하고는 조금도 상관없는 이야기니 역시 어찌되든 알 바 아니지요.

「……그렇군요. 오우지 님, 그리고 당신들도 모두 진심으로 그와 내 약혼 파기를 지지한다……라고 인식해도 되는 거겠죠?」

더 이상 끌어봤자 쓸데없을 것 같으니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할까요.

「당연하지!」

「흥, 경쟁자에게 소금을 보낸다는 것도 또한 일흥이라는 거다.」

「타쿠마에게 히메카를 넘겨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것과 이건 이야기가 달라. 정정당당이 이몸의 모토니까!」

「물론 진심입니다! 정의는 우리들에게 있슴다!!」

「누님, 남동생으로서 최소한의 정입니다. 여기서 모든 죄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죄한다면, 집안에서 의절하게 되는 정도로 용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저, 저를 위해서……고맙습니다.」

나로서도 정말로 고맙습니다!
감동으로 떨면서 울고 있는 그녀를 감싸주며 추켜세우고 있는 광경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이란 말인가. 그 기개입니다. 좀 더 노력해주세요.

「……진짜로, 약혼을 파기할 생각인가요?」

「이제 와서 울면서 사과해도 이미 늦었어! 난 "진실한 사랑"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히메카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이다!!!」

……그거 기묘한 우연이군요.
나도 작년에 그와의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에 눈을 뜨고 절찬 암약 중이랍니다. 우후후후…….

자, 그럼 슬슬 실행해도 되겠죠.
억울한 죄로 인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방적인 약혼 파기 선언을 들은 겁니다. 
누가 어떻게 봐도 내게 과실은 없고, 이제 와서 파기를 취소한다는 건 양가의 체면상 불가능하겠지요.

나는 환희로 떨릴 것 같은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오우지 타쿠마에게 물어본다.

「지, 진짜로……?」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안 돼요. 아직 웃으면 안 됩니다.
이런 건 철저하게 해서 다짐을 받아야지요. 나중이 되고 나서 「그때는 몰랐다」라든가, 「속았을 뿐이야」라고 말해도 귀찮으니까요.

「진심이신지요? 나중이 되고 나서 용서해 달라든가, 아까 한 말은 미혹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건데요.」

「끈덕지군.」

앞으로 한 마디!

「지이~~~인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약혼을 파기하는 거죠?」

「아까부터 무슨 소리냐!? 너와의 약혼은 파기한다! 이 오우지 타쿠마에게 두 말은 없다!!!」
 
"두 말은 없다" 잘 받았습니다!

「…………좋았어!」

어머나, 실수했네요. 너무 기쁜 나머지 무심코 숙녀답지 않은 승리의 포효를 울려버렸어요. 
싫다, 미코토도 참 상스럽네. 미안, 장난이었어. 오호호호호.

……헉!?

안 되지, 안 돼.
꿈 같은 전개에 텐션이 완전히 내려온 나머지 무심코 귀족 영애 롤플레이가 나와버렸네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싸움은 신속함이 으뜸이다.』라고 옛 위인도 말했습니다. 
이 좋은 기회를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바깥 해자는 물론 성 내부의 해자를 메우고 단숨에 성의 중심 건물까지 공락해버립시다.

「──여보세요. 아버님? 지금 시간 괜찮으신지요? ……지금부터 중요한 회합이 있다고요? 그런 건 알 바 아니니 잠자코 제 이야기를 들으세요.」

통화 중인 전화기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아버지의 사정 같은 건 알 바 아닙니다.
그런 것보다는 1초라도 빨리 이 낭보를 전해야 합니다. ……이 마음, 아버지에게 닿아라!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우지 타쿠마 님과의 약혼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파기되었습니다.」

『파기!? 파기라고!???』

그렇습니다. 파기입니다. 확실한 약혼 파기랍니다.

「아버님. 제가 약속했었죠?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가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집안을 위해 뭐든지 따르겠다고.」

『잠깐 기다려다오! 부탁이다!!』

기다리지 않을 거고, 부탁하셔도 들어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숙였고, 오우지 님과의 약혼에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 후에는 약정대로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습니다.」

『미코토!?』

나는 진짜로 결혼할 생각이었어요. 약속한 대로…….
사이온지 가문에는 지금까지 자유롭게 키워준 은혜가 있습니다. 
비록 거기에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사랑이 없어도,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고 해도, 그것에 고마워하고 있는 마음은 사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방이 약혼을 파기했습니다. 비록 계약 불이행이라도 저한테 하자는 없잖아요?」

『──! 잠깐! 증거는 있는 게냐!!』

그렇군요. 오우지 타쿠마가 진짜로 자기 쪽에서 약혼 파기를 선언했는지를 의심하고 있는 거죠?
설마 그의 강아지 룩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설치한 몰래 카메라가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증거요? 그거라면 나중에 4K 동영상으로 보내드릴게요. 그것보다────」

아아……, 급속히 내 머리가 차가워지고 깨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안개에 싸여 있던 소망이, 안개가 끼어 있던 상망이, 안개에 덮여 있던 대망이 밀어넣고 있던 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탁류가 되어 밀어닥쳐 간다.

있잖아요, 아버님──.
왜 제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서 아버님의 부탁을 들어드렸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사이온지라는 가문에 고마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예요.
하지만 말이죠. 그것만이 아니예요.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그것도 그렇겠죠.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걸요. 마음을 전하는 것도, 말을 전하는 것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말이죠…….

그날 그와 접하면서 따스함을 느끼고, 울고, 달라붙고, 응석부리면서 저는 알아버렸어요.
누군가가 조건 없이 내 옆에 있어준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안심을, 안녕을, 안식을, 안락함을, 안도감을, 평안무사함을────.

그래서 기대해버렸어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있어도, 소용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도.

나는 욕심을 부려버렸어요.
바라고 말았던 거예요. 달라붙고, 응석부리고, 손을 뻗으려고 했어요.

있잖아요, 아버님──.
왜 끝까지 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죠?

요구의 목적을 묻고, 계획에 숨겨진 의도를 읽으려 하면서도, 제 본심을 물어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진심을 헤아려주길 바랐어요.
──함의를 이끌어주길 바랐어요.

사이온지 가문의 당주로서가 아니고,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가 아니고, 그저 부친으로서 그저 딸로서 나를 봐주길 바랐는데.

전하지 않았으니까 전해질 리가 없다.
말하지 않았으니까 헤아릴 리가 없다.

제멋대로인 것은 나, 오만한 것도 나, 탐욕스러운 것도 나.

그래도 믿어보고 싶었다.
거기에 가족으로서의 정이나 유대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다면 고교 졸업과 동시에 오우지 타쿠마와 결혼하거라. 너와 오우지 가문의 혼인은 사이온지 가문으로서 중요한────』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내 나름대로의 마지막 효도라고 그렇게 결론을 내고, 그렇게 결단을 내리면서 나는 가족이라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이상하다.
사이온지 가문으로서 잘못되어 있는 것은 나고, 이단인 존재도 나고, 미쳐 있는 것도 나.

────나는 이상하다.
한 여자로서 그를 원하고 있는데, 그만을 바라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는 것에 수긍하고 있다.

"사이온지 가문의 딸"로서 살아 있던 나와 "사이온지 미코토"로서 살려고 하고 있는 나.
그런 이율배반에 참기 힘든 나머지 마음이 비명을 질러서 할 수 없이 나는 가면을 쓰기로 했다.

라이트 노벨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자신을 납득시켜서 내 안의 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고 안에 잠든 질척질척한 마음을, 바닥에 가라앉은 엉망진창인 감정을 속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문득 정면에서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있는 것에게 초점을 맞춘다.

내 약혼자였던 것이,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연실색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다.

네, 그래요.
지금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저들 덕분이예요.

오우지 타쿠마 씨.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약혼자였어요.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도둑 고양이 씨.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음자였어요.

그러니까 그때처럼 웃어드릴게요.
어릴 때는 내가 웃으면 당신은 매우 기쁜 것 같았었죠.

────고마워요. 내 전 약혼자 씨.

어머나 어머나. 내가 진심으로 웃어줬더니 기쁜 나머지 기절해버린 모양이네요.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런 사소한 거에 상관할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까요.

자, 그럼 이쪽도 끝내기로 합시다.

「──이제 사이온지 가문에는 두 번 다시 속박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아가겠습니다.」

통화구 앞에서 말문이 막힌 아버지에게 작별의 말을 고한 뒤, 이제 볼일이 끝난 상태가 된 스마트폰을 밟아 부순다.
대신할 스마트폰은 개인 변호사를 통해서 준비해 뒀으니, 사이온지 가문으로서 계약하고 있는 이쪽은 이제 필요 없다.

「……우훗.」

끝내고 보니 너무나 어이없는 것이었다.
버리고 나니 싱거운 것이었다.

「우후, 후후후후후. 우후후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감도, 메울 수 없는 적막감도, 정신이 들고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는 미소와 함께 흩어지고 있었다.

「크훗, 후후후후.」

시선을 느낀다.
기척을 느낀다.
그러므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명확히 알 수 있다.

「후후……」

뒤돌아보면 그가 있다.
경악한 것 같은, 곤혹스러워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어딘가 초조함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도 무척 사랑스러워서 그만 웃어버린다.

「우후후.」

「읏……!」

그래. 이상하지.
어쩌면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라. 계단에서 살린 상대가 나라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
아니면 기억하고 있거나, 깨닫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쭉 묻고 싶었다.
쭉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당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깨닫지 못해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거라고 해도, 그런 건 나하고는 상관없어.

나는 당신의 따스함을 잊지 않으니까.
나는 당신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는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좋으니까.

──그가 무언가를 확인하려듯이 옆을 보았다.

말려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시선 끝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얼른 거리를 벌렸다.

──그가 도움을 청하려듯이 반대쪽을 향했다.

어제 그에게 성희롱을 하고 있던 삼인조 중 한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미안해요. 떠올렸더니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무심코 살기를 보내버렸어요. 딱히 용서해주지 않아도 돼요.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그가 도움을 요청하려듯이 뒤를 향했다.

유감이지만 소용없어요.
거기에는 아무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내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당신뿐이예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합시다.

당신과 나의, 두 사람의 인생을────.

「…………아하♡」

그러니까 부탁이예요. 나를 봐줘요.

 

 *  *  *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그에 응하듯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나아간 만큼 나도 나아간다.
시선은 피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

줄어들지 않는 두 사람의 거리.
하지만 이윽고 그것도 마지막을 맞이한다.

어떤 일에도 마지막이 온다고 하지만, 지금만큼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읏……」

내 등이 복도와 교실을 멀리하는 벽에 부딪혔다.
순간에 뒤를 돌아보고 눈앞에 펼쳐지는 눈에 익흔 교실의 벽에 아연실색하고 바로 정면으로 다시 향했다.

「……후후.」

어느새 몇 미터는 되었을 거리가 제로가 되어 있었다.

「사, 사이온지 야──」

가다듬듯이 하면서 입을 통해서 말을 꺼냈지만, 그 말은 끝까지 단언하지 못하고 차단되었다.
초조해졌는지 그녀의 두 손이 내 얼굴을 사이에 두듯이 하면서 벽을 친 것이다.

……벽쿵?

어? 나 지금 사이온지 양한테 두 손으로 벽쿵을 당한 거야?
보통 이런 때의 남녀가 서는 위치는 반대 아니야?

「……미코토.」

「네?」

「미코토라고 불러.」

「아 네.」

후에에…, 거역할 수 없어 …….
진짜로 거역할 수 없어요. 얼굴은 웃는 얼굴이고, 눈도 기분이 좋아 보이고, 목소리도 기분이 좋은 것 같지만, 감기고 있는 분위기랄까, 오오라 같은 위압감이 너무 강해서 거절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어, 잠깐! 이거 진짜로 사이온지 양? 진짜로 사이온지 양 맞아?

「……있잖아.」

「네, 네.」

그렇지 않아도 가까웠던 두 사람의 거리감이 더욱 줄어든다.
상대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박자에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나와 그녀의 입술이 닿아버릴 것 같을 정도로…….

「쭉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날 이후로, 이렇게 될 날을, 이렇게 될 수 있는 날을 나는 쭉 기다리고 있었어, 그걸 위해, 그것만을 위해 오늘까지 준비해 왔어.」

어딘가 열기가 담긴 눈동자로 그녀는 황홀하게 말한다.
흔들리면서 물기를 띠는 그 눈은, 말하는 어조는 초조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해하는 것 같다고도 생각되었다.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어.」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그녀의 한숨을, 그 숨결을 가까이서 느껴버린다.

「이제 나를 속박하는 집은 없어. 나를 옭아매는 약혼자도 없어.」

나락을 떠올리게 하는 깊고 어두운 눈동자는 배인 눈물로 반짝반짝 눈부셔서 마치 어두운 밤에 떠오르는 환상 같았다.

「……드디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스러질 것 같은 목소리로 쥐어짜낸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다가오는 그녀를 본다.
눈에 들어온 것은 왜인지 그녀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도, 색기와 향기를 뿌리는 요염한 신체도 아니고, 작게 떨리는 가는 양어깨와 양팔이었다.

「사이온…읏……미코토 ㅇ…………미코토.」

희미하게 미간을 대고, 약간 눈썹 끄트머리를 내리면서 그녀는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학교에서도 유명한 사이온지 미코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적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가의 아가씨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용모를 타고났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약혼자가 옆에 있다.

그렇게 누구나 알고 있는 것밖에 몰랐다.

「……미코토.」

내가 몰랐던 사이온지 미코토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약하게 떨리는 가는 어깨.
작게 움츠러드는 하얀 지체.
응석부리듯이 뻗는 가녀린 손.
행복하게 미소 짓는 온화한 어린 얼굴.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그 정도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의문은 분명 그녀가 바란 말이 아니겠지.

「……부탁이야.」

그녀는 한순간만 허를 찔린 것처럼 놀란 얼굴을 한 뒤, 다음 순간에는 요염하게 쑥스러워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어린아이가 두려워하면서 떼를 쓰는 것으로 보였다.

「내 것이 되어줘.」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간원일까.

「날 당신 것으로 해줘.」

그것은 얼마나 비장한 애원일까.

「나를…봐줘……」

그것은 얼마나 유치한 탄원일까.

「응……」

「……!」

살짝 갑작스럽게 아무 예고도 없이 사이온지 미코토는 기습적으로 나와 입맞춤을 주고 받았다.

 

 *  *  *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놀란 것을 알았지만, 그것도 곧바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된다.

「응……」

「……!」

입술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퍼스트 키스는 레몬맛』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런 것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현실에서는 맛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쪽 것인지도 모르는 희미한 립의 미끈미끈한 촉감이 있을 뿐.

이 행위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식 행위처럼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신 앞에서 맹세하는 의미도 없이, 오로지 서로의 입술을 닿게 하고 있을 뿐.

그래, 그뿐이다.
단지 그뿐.
그뿐인데 왜 내 가슴은 이렇게 크게 울리고 있는 걸까. 
온 몸이 달아오른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몸 속이 그것을 요구해서 참을 수 없다.

「아…음…읏……후……응응」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혀를 뻗는다.
그가 준비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놓치지 않도록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지탱한다.
내가 뻗은 혀 끝이 그의 단단히 닫힌 입술을 억지로 밀어서 연다.

「응…후우……읏…아음………응……」

아직이다.
아직 부족하다.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아직 멀다.

「후……음…아……응………」

혀를 뻗고 기게 해서 그의 구강을 유린한다.
침입하듯이, 도려내고 열듯이 혀를 끼어들게 한다.
서로 맞물리는 약간의 틈새를 찾아내고 매달리듯이, 바라듯이, 기도하듯이 나는 혀를 꽂아넣었다.

「…읏……후음……아…응……」

망설이는 듯한 저항도 곧바로 사라졌다.
단념한 것처럼, 붙들어 매인 것처럼, 위로하듯이 그가 내 혀끝을 맞이해준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따스함과 끈적거리는 타액.
나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탐한다.
그의 혀를 얽히게 하고 내 혀로 굴려서 그 부드러우면서 딱딱한 이상한 감촉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후아…읏」

얼마나 요구하고 있었을까.
얼마나 계속하고 있었을까.

영원하다고도 생각되었고, 한순간인 것 같다고도 느낀다.
산소가 부족해져서 멍해진 머리로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떨어지는 게 아쉽다는 듯이 살짝 그의 입술을 열었다.

거리를 벌린 만큼만 서로의 혀끝에서 늘어진 타액이 실을 당긴다.
곧게 뻗어 있던 두 사람을 이어주는 투명한 실이 이윽고 중력에 눌려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

그 광경에 가슴이 단단히 조여지면서 괜사리 분하고, 괴롭고, 슬퍼서 그와의 연결을 끊고 싶지 않은 나는 매달리듯이 다시 그와 입술을 겹친다.

「하음…음……응………후우…」

두 번째 키스는 순조롭게 받아들여졌다.
반들반들한 에나멜질 감촉이 즐거워서,
얼굴에 닿는 그의 콧김이 간지러워서 재미있었고,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도 높은 체온에 두근거리고,
얽히는 혀 끝에서의 술래잡기에 마음이 뛴다.

나는 두 손을 내리고 그대로 그의 허리에 둘러서 꼭 껴안았다.

「응응……!」

등에 따스한 감촉이 돌아오면서 그의 팔이 나를 꼭 껴안는다.
그것만이 아니라 어색한 손놀림으로, 익숙하지 못한 움직임으로 서투르게 천천히 그가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뚝뚝, 주르륵 하고 조용히 뺨을 타면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은 끝이 없다.

그의 팔에 안기고────.
그의 따스함을 피부로 느끼고────.
그의 냄새에 감싸이면서────.

내 마음을 뒤덮고 있었던 갈라진 껍질이 녹아내리듯이 주르르 떨어졌다.

「…………응」

쭉 계속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나는 조용히 입술을 떼어놓고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조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자신이 없다.

새삼스럽지만 불안해져버렸다.
갑자기 이런 짓을 했으면서 뭘 고민하고 있는 거냐고 스스로도 기가 막혀버린다.
상관없었을 텐데.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움받아도, 소외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감금이라도 하고 시간을 들여서 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

나는 또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그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냄새에 감싸여 있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또 기대해버렸다.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좋아해주길 바란다.
손을 뻗어주길 바란다.

내 마음에 접해줬으면 한다.

「……!」

나는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필사적인 마음으로 그의 얼굴을 엿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날카로워지는 고동, 끓어오르는 마음, 쑤시는 마음으로 흔들리는 나.
다가오는 젖은 눈동자, 겹치는 젖은 입술.
내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의 실이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져 날아갔다.

 

 *  *  *

 

……너무 빨랐던 건지도 모른다.

「미, 미코토……?」

솔직히 장소의 분위기에 휩쓸린 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반성도 하지 않는다.
……아니, 역시 조금 생각 없이 저질러버린 건지도 모른다.

「어~이?」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던져버린 것은 다름아닌 나.
그렇다면 다음은 나중 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정신이다.

「……혹시, 싫었어?」

왜냐하면 이제 두 번 다시 자신이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한 결과가 그것이었으니까.

「──장, ────해요」

갑자기 전원이 끊긴 것처럼 정색하고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린 미코토.
내가 몇 번 불러도 반응이 없었지만 마침내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 
텅 빈 눈동자를 수상하게 빛내면서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고 있다.

「────혼」

「어? 뭐라고?」

잘 들리지 않아서 무심코 둔감계 주인공 같은 대사를 내뱉고 말았다.
내가 약간 쑥스러워서 쓴웃음을 짓고 있자 무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그녀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왔고, 또 다시 두 손을 구사해 달아날 데가 없는 벽쿵을 했다. 매우 남자답다.

「지금 당장, 결혼해요.」

너무 남자다운 거 아닙니까 ……?
내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에 그녀는 무언가를 헤아렸는지 수긍하고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이미 새 주택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아니야, 그게 아니야.」

부탁이니까 날 놔두고 혼자 마음대로 미래를 구상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아, 혹시 타워 맨션은 싫으신가요? 괜찮아요. 단독 주택도 확보되어 있으니까요!」

「그게 아니야.」

이제 부동산 이야기는 그만두자. 좀 더 전제로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따로 있잖아.

「그게 말야, 당장 결혼하자고 말해도……무리야.」

「……네?」

어째서 거기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 굳어지는 걸까.
좀 더 상식적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 사이에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게, 법적으로……무리야.」

「법적……?」

「난 아직 17살이야. 결혼은 남자는 18살부터잖아. 그러니까 불가능해.」

「……아, 응.」

그녀는 멍해진 상태로 작게 수긍했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뭔가 의아한 느낌으로 미간을 대어 보인다.

「……저기.」

「응?」

이윽고 자신 안에서 결론이 나왔는지, 그녀는 내 두 뺨에 손을 대고 가만히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마치 내 진심을 읽으려고 하듯이, 함의를 파악하려 하듯이,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물어보았다.

「그건 법적인 문제가 없으면 나와 결혼해주겠다는 건가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질문에 머리가 새하얘진다.
그녀의 말을 곱씹은 뒤 질문한 의도를 이해하고 나서 한 번 더 머리가 새하얘졌다.

한 박자 쉬고 뇌가 재기동.

그때 문득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에 나는 황급히 당황함을 숨기려듯이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아무래도 『눈은 입만큼 말을 한다』라는 속담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조용히 내 눈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생긋 하고 입술을 옆으로 넓히며 미소를 만든다.

「…………우훗♡」

속마음을 눈치채여서 부끄러움으로 번민하는 나를 야유하듯이 그녀는 웃었다.
자신의 우는 얼굴을 속여 넘기려듯이 그녀는 웃었다.

그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럼 갈까요.」

「뭐? 어디로?」

「물론 우리 새 주택이지요.」

「후에……?」

억지로 이끌려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고 택시에 타게 되었고, 도착한 곳에는 타워 맨션이 우뚝 서 있었다.

「……진짜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망연하는 나를 본 사이온지 미코토는 웃으면서 내 목에 스윽 하고 두 손을 두른다.

「이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주저하지 않고 입술을 겹친 뒤 그녀는 선언한다.

「이제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장난기 있게 미소 지으면서 그녀가 내 손을 잡아 당겼다.

「언제까지나 잘 부탁할게요. ……여보.

이후에 마구마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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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설정】

·그
주인공으로 보이지만 히로인.
이름은 키노시타 스바루라는 설정이었지만, 작품 속에서 살리지는 못했다.
친구가 권해준 비뚤어진 외톨이가 주인공인 청춘 러브 코메디물에 영향을 받아서 비뚤어진 성격을 목표로 하지만, 근본이 소심한 것과 사람 좋은 성격 때문에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설정이지만, 작품 속에서 활용되지는 않았다.
사이온지 미코토는 며칠 후에 복도에서 재회했을 때 뒷모습으로 알아보긴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정이지만, 작품 속에서 자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약간 마음을 품었지만, 재회 직후에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정으로 발전하기 전에 무산되었다는 초기 설정이 있었지만, 작품 속에서 잘 활용하지 못했다.

·사이온지 미코토
얀데레로 보이지만 크레이지 사이코 응석쟁이.
죽을 뻔한 것으로 각성했고, 목숨 대신 정서가 죽었다.
그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임프린팅이며, 가족애를 얻을 수 없었던 것에서 오는 의존이라고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정신으로 질주하는 위험한 사람.

·오우지 타쿠마
자기 행동으로 화를 자초하는 역할이자 어릿광대.
본인은 모르지만, 오우지 가문로서는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상당한 규모의 개인 자산을 쌓아 올린 미코토의 자산운용 능력에 기대하고 있어서, 결혼하면 부진이 계속되는 투자 부문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부실의 원인은 대기업이 되고도 일족 경영에 집착한 데 따른 폐해이기도 하다.
물론 이 뒤에 호되게 혼났다.

·여성향 게임 히로인 포지션인 소동물계 미소녀
평범하게 여성향 게임을 좋아하는 꿈꾸는 소녀.
반장난으로 G5 멤버에게 여성향 게임의 기세로 이벤트를 소화해 갔더니 잘 되어버려서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되어버린 불쌍한 사람.
최종적으로 역하렘 엔딩을 목표로 한 것도 법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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